Mediram Health Column

메디람 건강칼럼

파킨슨병 진단 시기 증상 나타나면 늦은 걸까?
2026. 08. 20

닥터 구의 건강 칼럼 (29)
손 떨림이 시작됐다면 이미 절반은 진행된 후일 수 있습니다

파킨슨병 진단 시기 증상 나타나면 늦은 걸까?


이전 글에서는 알파-시뉴클린이 만들어내는 분자 수준의 손상이 흑색질 도파민 신경세포 안에서 서서히 쌓여가는 과정을 다뤘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의 세포가 죽음에 이르고 도파민이 줄어들며, 이 손상이 흑색질 안 이웃 세포들로까지 번져가는 흐름을 확인했었죠.
그런데 여기서 다소 의외의 사실 한 가지가 드러납니다.
이런 손상이 흑색질 안에서 계속 진행되어 도파민 신경세포의 절반 가까이가 사라지는 동안에도, 환자에게는 운동 증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그 긴 시간 동안 환자의 뇌 안에서는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요?
그리고 마침내 운동 증상이 겉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그 순간은, 임상적으로 어떤 뜻을 지니는 것일까요?





도파민 신경세포가 먼저 무너지는 배경 — 짧게 다시 짚기

앞서 흑색질의 도파민 신경세포가 다른 신경세포보다 유독 알파-시뉴클린 독성에 취약한 세 가지 배경을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한 세포가 관리해야 할 가지 영역이 지나치게 넓어 평상시에도 유지 비용이 크다는 점이 첫 번째였습니다.
도파민을 매일 취급하는 특성상 산화 부담이 쌓인다는 점이 두 번째였고요.
스스로 리듬을 만들어 발화하는 방식이 미토콘드리아에 부담을 더한다는 점이 세 번째였습니다.
이 세 가지가 한 세포군에 동시에 겹쳐 작용하다 보니,
같은 알파-시뉴클린 병리가 뇌 여러 부위에 영향을 미치더라도 흑색질의 도파민 신경세포가 가장 먼저, 가장 심하게 무너집니다.



손실 앞에서도 뇌는 가만있지 않는다 — 보상이 작동하는 세 가지 방식

그렇다고 도파민 신경세포가 줄어드는 동안 뇌가 그저 손상을 지켜보고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흑색질의 도파민 시스템에는 손실에 대응하는 세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살아남은 세포들이 평소보다 많은 도파민을 만들어 부족분을 채우는 방식이 하나입니다.
신호를 받는 신경세포의 도파민 민감도가 함께 올라가 적은 양으로도 충분한 신호를 전달받게 되는 방식이 또 하나입니다.
손상되지 않은 주변 세포가 새로운 가지를 뻗어 끊긴 연결의 일부를 대신 맡는 방식도 있습니다.
이 세 가지 방식이 함께 작동하면서, 흑색질 안에서 도파민 시스템이 조금씩 줄어들어도 겉으로는 한동안 변화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보상이 한계에 부딪히는 지점 — 첫 증상이 나타났을 땐 이미 절반이 사라진 뒤

하지만 이 보상에도 결국 한계가 찾아옵니다.
1991년 영국의 신경학자 페른리(Fearnley)와 리스(Lees)가 학술지 Brain에 보고한 부검 연구는 이 지점을 수치로 명확히 확인해 주었습니다.
운동 증상이 막 시작된 시기의 환자들을 살펴보면, 흑색질의 도파민 신경세포가 평균 50~70%가량 이미 사라져 있는 상태였다는 것이 연구의 핵심 결과였습니다.
이후 이루어진 영상 연구와 후속 부검 연구들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거듭 확인되고 있습니다.



진단이라는 순간이 담고 있는 뜻

이 사실은 지금까지 짚어온 분자 수준의 이야기 전체에 결정적인 임상적 의미를 하나 더해 줍니다.
환자가 진료실에서 손 떨림이나 걸음이 둔해진 증상을 처음 호소하는 그 순간은, 병이 막 시작된 시점이 아닙니다.
이미 흑색질의 도파민 시스템은 절반 가까이 무너져 있고, 남은 세포들이 동원할 수 있는 보상 능력을 다 써버린 끝에, 더는 그 손실을 가릴 수 없게 된 지점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진단의 시점이란 병이 시작된 지점이 아니라, 흑색질의 보상이 한계에 부딪힌 지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한 문장이야말로 진단을 받은 환자와 가족이 가장 먼저 알아 두어야 할 사실입니다.
손이 떨리기 시작한 한 달, 혹은 걸음이 둔해진 몇 주는 사실 뇌가 오랜 시간 스스로 손실을 가려오다가 그 가림막이 마침내 얇아진 순간 비로소 겉으로 드러난 결과일 뿐입니다.
그 시점에 병이 갑자기 새로 생겨난 것은 아니라는 뜻이죠.


여기서 한 가지 더 짚어 둘 점이 있습니다.
보상 능력이 영원히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진단 이후에도 도파민 신경세포의 소실은 서서히 계속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남은 세포들의 보상 여력도 점점 줄어듭니다.
그래서 환자가 실제로 겪는 운동 증상은 처음엔 약하게 시작되었다가, 수년에 걸쳐 점차 뚜렷해지는 양상을 보이게 됩니다.





마치며

흑색질의 도파민 신경세포가 무너지는 동안에도 환자가 오랫동안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보상의 시간, 그리고 그 보상이 한계에 다다르는 순간이 곧 진단 시점이라는 임상적 의미를 함께 살펴봤습니다.
그렇다면 그 한계를 넘어선 순간, 환자가 맨 처음 마주하는 변화는 무엇일까요?
익숙한 파킨슨병의 운동 증상들이 실제로 환자의 일상 속에서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이어지는 글들에서 하나씩 짚어보려 합니다.
그 첫 번째로 다룰 변화는 바로 동작이 느려지는 변화입니다.



참고자료

1차 사료 / 핵심 임상 연구
Fearnley JM, Lees AJ. Ageing and Parkinson's disease: substantia nigra regional selectivity. Brain. 1991;114(5):2283-2301.


학술 2차 문헌
Surmeier DJ, Obeso JA, Halliday GM. Selective neuronal vulnerability in Parkinson disease. Nat Rev Neurosci. 2017;18(2):101-113.
Zigmond MJ, Abercrombie ED, Berger TW, et al. Compensations after lesions of central dopaminergic neurons: some clinical and basic implications. Trends Neurosci. 1990;13(7):290-296.
Bezard E, Gross CE. Compensatory mechanisms in experimental and human parkinsonism: towards a dynamic approach. Prog Neurobiol. 1998;55(2):93-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