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구의 건강 칼럼 (30)
파킨슨병 초기증상, 서동이 보내는 5가지 신호
서동증이란? 파킨슨병 첫 증상 A to Z앞선 글에서는 한 가지 중요한 지점을 함께 짚어봤습니다.
환자가 운동 증상을 처음으로 자각하게 되는 시점 말인데요.
바로 흑색질 도파민 시스템이 절반 가까이 손상되어, 몸이 더 이상 보상 작용만으로 그 손실을 가려내지 못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경계를 넘어선 뒤, 환자에게 맨 처음 나타나는 변화는 무엇일까요.
의학에서는 이 첫 변화를 서동(Bradykinesia)이라는 하나의 용어로 정리합니다.
한자를 그대로 옮기면 '느릴 서(徐)·움직일 동(動)'이고, 풀어 말하면 '동작이 느려진다'는 뜻이에요.
다만 이 짧은 단어 하나가, 실제 진료 현장에서는 훨씬 다양한 얼굴로 드러납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 구체적인 모습들을 차근히 살펴보려 합니다.
하나의 단어에 담긴 세 갈래의 변화서동이라는 표현은 사실 세 가지 다른 변화가 겹쳐진 개념입니다.
동작 자체의 속도가 느려집니다. 같은 동작이라도 완료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는 거죠.
동작의 범위와 크기가 줄어듭니다.
걸음의 폭, 손짓의 크기, 글씨의 크기가 함께 작아집니다.
동작을 시작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집니다.
"움직여야지"라고 마음먹은 순간과 실제 몸이 반응하는 순간 사이의 틈이 벌어집니다.
이 세 갈래가 동시에 진행되기 때문에, 환자분들이 실제로 표현하는 어려움은 단순히 "느려졌다"는 말보다는 조금 다릅니다.
동작 전체가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작아지고, 무겁게 느껴진다는 쪽에 더 가까워요.
일상 속 서동, 다섯 가지 장면으로 살펴보기서동이 하루 일과 중 가장 자주 드러나는 순간들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① 아침, 침대나 의자에서 몸을 일으킬 때 "일어나야지"라는 생각과 실제로 일어나는 동작 사이에 미묘한 지연이 생깁니다.
한두 박자쯤 더 필요해지고, 첫 동작이 예전처럼 바로 이어지지 않는 거예요.
② 걸을 때 팔의 흔들림이 줄어드는 것 정상적인 보행에서는 양팔이 자연스럽게 좌우로 흔들립니다.
서동이 시작되면 본인은 잘 느끼지 못해도 한쪽 팔의 흔들림부터 점점 줄어듭니다.
결국 거의 흔들리지 않는 상태까지 이어지기도 하는데, 정작 가족이 먼저 알아채는 경우가 많습니다.
③ 글씨 크기가 점점 작아지는 현상 (micrographia) 한 줄을 써 내려가다 보면 첫 글자는 평소 크기로 시작하지만,
줄 끝으로 갈수록 글자가 눈에 띄게 작아집니다.
예전에 쓴 메모와 최근 서명을 나란히 놓고 보면 이 변화가 뚜렷이 드러나죠.
④ 얼굴 표정이 무뎌지는 변화 얼굴 근육도 서동의 영향을 피해가지 못합니다.
표정 변화 폭이 줄고, 눈 깜빡임이 감소하며, 입꼬리의 움직임도 둔해집니다.
본인은 평소처럼 웃거나 놀라고 있다고 느끼지만, 가족들은 "표정이 굳었다"고 자주 말씀하세요.
⑤ 목소리가 작아지고 억양이 단조로워지는 것 성대와 입술의 세밀한 움직임 역시 영향을 받습니다.
목소리의 크기가 줄고, 원래 있던 억양의 굴곡이 사라지면서 말투가 평평하게 들리게 됩니다.
진료실에서 확인하는 방법서동을 확인할 때 의사가 진료실에서 가장 흔히 쓰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환자에게 한쪽 손의 엄지와 검지를 빠르고 크게, 반복해서 마주 두드려 보라고 요청하는 거예요.
정상적인 경우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속도와 크기가 비교적 일정하게 유지됩니다.
하지만 서동이 있는 환자는 처음에는 그런대로 시작하다가도, 시간이 지날수록 속도가 느려지거나 두드리는 폭이 좁아지는 패턴을 보입니다.
때로는 이 두 가지가 함께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 단순한 검사 하나만으로도, 운동 명령이 근육까지 매끄럽게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진료실에서 바로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요서동이 발생하는 분자·회로 차원의 이유는 앞선 글들에서 다룬 내용 안에 이미 담겨 있습니다.
흑색질에서 만들어지는 도파민이 줄어들면, 기저핵에서 운동 명령이 통과해야 할 '문'이 예전만큼 활짝 열리지 않습니다.
명령 자체는 분명히 만들어지지만, 그 명령이 근육에 닿기까지 더 오랜 시간이 걸리고, 도달했을 때의 신호 세기도 약해지는 셈이죠.
그래서 서동은 특정 동작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운동 시스템 전체에 걸쳐 나타나는 가장 폭넓은 변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진단에서 서동이 지니는 무게 — 필수 증상이라는 사실마지막으로 꼭 짚어드리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현재의 국제 진단 기준(MDS 2015)에서 서동은 파킨슨병 진단에 반드시 확인되어야 하는 필수 증상입니다.
다시 말해 떨림이나 다른 증상이 아무리 뚜렷해도, 서동이 객관적으로 확인되지 않으면 진단 기준상 파킨슨병으로 분류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떨림이 전혀 없더라도 서동이 명확히 있다면, 진단의 핵심 조건은 이미 충족된 것입니다.
이 사실은 환자분과 가족 모두 기억해 둘 가치가 있습니다.
가장 화려하게 드러나는 증상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조용하고 서서히 진행되는 이 변화 하나가 파킨슨병 진단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으니까요.
마치며서동이라는 단어에 담긴 세 갈래의 변화, 일상 속에서 드러나는 다섯 가지 장면, 진료실에서의 확인 방법,
그리고 이 증상이 진단에서 차지하는 무게까지 함께 살펴봤습니다.
그런데 환자분들이 자주 호소하시는 또 다른 변화가 있습니다.
동작이 느려지는 것과는 다른 결의 어려움, 바로 "몸이 뻣뻣하다"는 느낌인데요.
다음 글에서는 이 변화를 자세히 다뤄보겠습니다.참고자료1차 사료 / 진단 기준
Postuma RB, Berg D, Stern M, et al. MDS clinical diagnostic criteria for Parkinson's disease. Mov Disord. 2015;30(12):1591-1601.
학술 2차 문헌
Jankovic J. Parkinson's disease: clinical features and diagnosis. J Neurol Neurosurg Psychiatry. 2008;79(4):368-376.
Berardelli A, Rothwell JC, Thompson PD, Hallett M. Pathophysiology of bradykinesia in Parkinson's disease. Brain. 2001;124(11):2131-2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