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구의 건강 칼럼 (32)
파킨슨병 떨림 vs 본태성 떨림, 헷갈리는 이유
파킨슨병 손떨림, 가만히 있을 때 심해지는 이유지난 글에서는 환자 스스로 느끼기도 전에 가족이나 주치의가 먼저 알아채는 변화, 강직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파킨슨병'이라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곧바로 떠올리는 장면은 따로 있어요.
바로 가만히 있는 손이 스스로 떨리는 모습이죠.
의학에서는 이 현상을 '안정 시 진전(resting tremor)'이라고 부르는데요,
한자를 풀어보면 '편안하고(安) 고요한(靜)' 상태에서 나타나는 떨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누구나 알 것 같지만 사실은 가장 자주 잘못 이해되는 이 증상을 조금 더 깊이 다뤄보려고 합니다.
'가만히 있을 때'라는 결정적 단서파킨슨병의 떨림이 다른 떨림과 확연히 구분되는 지점은 바로 언제 떨림이 나타나는가입니다.
떨림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어요.
무거운 물건을 들 때 팔이 흔들리는 떨림, 손을 뻗어 글씨를 쓰려는 찰나 손끝이 흔들리는 떨림, 긴장할 때 다리가 떨리는 떨림까지.
이런 떨림들은 모두 어떤 동작을 하려고 시도할 때 나타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파킨슨병의 떨림은 이와 완전히 반대예요.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손을 무릎 위에 편안히 놓아두고 있을 때 오히려 가장 뚜렷해집니다.
환자 본인은 손을 가만히 두고 싶은데도, 뜻과 상관없이 저절로 흔들리기 시작하는 겁니다.
환자들이 일상에서 떨림을 처음 발견하는 순간들① TV를 볼 때
소파에 앉아 화면을 보면서 손을 무릎에 얹어두었을 때, 무심코 손을 내려다보다가 떨림을 처음 알아차리는 환자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손가락 한두 개가 작지만 규칙적인 리듬으로 흔들리는 걸 그제야 발견하게 되는 거죠.
② 산책 중 팔이 옆으로 늘어져 있을 때
걷다 보면 한쪽 손은 몸 옆으로 자연스레 늘어지기 마련인데요.
그 손이 걸음걸이의 리듬과는 무관하게 작게 떨리는 걸 옆에서 함께 걷던 가족이 먼저 알아채는 일도 흔합니다.
③ 물건을 잡으려 손을 뻗는 순간, 떨림이 줄어듦
가장 흥미로운 대목이라 할 수 있어요.
가만히 둘 때는 뚜렷하던 떨림이 컵이나 리모컨을 집으려고 손을 뻗는 그 순간에는 약해지거나 거의 없어집니다.
그러다 손을 다시 가만히 두면 떨림이 재차 시작되고요.
④ 잠자는 동안에는 나타나지 않음
잠든 상태에서는 손이 떨리지 않습니다.
환자가 일부러 억누르는 게 아니라, 수면 중에는 운동 신호 자체가 차단되기 때문에 떨림도 자연히 멈추는 것입니다.
⑤ 긴장하거나 주목받을 때 더 심해짐
진료실에서 의사와 마주 앉는 순간이나 여러 사람 앞에서 말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떨림이 평소보다 커지는 걸 경험하는 환자분들이 많아요.
떨림이 얼마나 심해질 수 있는지를 스스로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알약을 굴리는 듯한' 손가락 움직임파킨슨병 떨림에는 특징적인 모양이 하나 더 있습니다.
엄지와 검지가 맞닿은 채로 마치 작은 알약을 굴리듯 움직이는 모습인데요, 의학에서는 이를 영어로 'pill-rolling'(환약 굴리기)이라고 부릅니다.
손목 전체가 흔들리는 게 아니라 손가락 끝만 작은 원을 그리며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이 모양은 처음 보는 사람의 눈에도 꽤 특징적으로 다가옵니다.
이 떨림은 대개 한쪽 손에서 먼저 나타나요.
오른손잡이라고 해서 오른손부터 시작되는 건 아니고, 사람마다 먼저 영향받는 쪽이 다르며 시간이 지나면서 반대편으로 서서히 퍼져나가는 양상을 보입니다.
떨림의 속도는 매우 일정한 편이라, 1초에 약 4~6회의 규칙적인 박자를 유지합니다.왜 가만히 있을 때 떨릴까이 현상의 근본 원인은 앞서 다룬 도파민의 역할과 이어져 있습니다.
우리 뇌는 가만히 있는 순간에도 끊임없이 작은 운동 신호를 만들어내는데요, 도파민은 이런 불필요한 신호가 근육까지 전달되지 않게 막아주는 필터 같은 역할을 합니다.
도파민이 줄어들면 이 필터 기능이 약해지죠.
평소라면 걸러졌을 자잘한 신호들이 그대로 근육으로 새어 나가게 됩니다.
게다가 이 신호들이 약 4~6Hz라는 매우 규칙적인 리듬을 타기 때문에, 환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손가락이 일정한 박자로 떨리는 양상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환자가 의도적으로 손을 움직이려는 순간에는 강한 운동 명령이 이 작은 떨림 신호를 덮어버려서 떨림이 줄어든다는 사실이에요.
앞서 본 ③번 장면이 만들어지는 이유를 분자 수준에서 설명하면 바로 이것입니다.
하지만 떨림이 없는 환자도 많습니다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파킨슨병 환자의 약 30%는 병이 진행되는 내내 떨림이 거의 없거나 아예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런 환자들은 떨림 대신 동작이 느려지고 몸이 뻣뻣해지는 증상이 주로 나타나요.
이 사실이 환자와 가족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떨림이 없으니 파킨슨병이 아니다"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떨림은 가장 널리 알려진 증상일 뿐, 진단에 반드시 필요한 조건은 아닙니다.
앞선 글들에서 살펴봤듯 진단에 꼭 필요한 것은 서동이며, 떨림은 그 위에 동반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증상입니다.
반대 방향의 오해도 흔해요.
손이 떨린다고 해서 전부 파킨슨병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만 떨리는 본태성 떨림처럼, 흔하면서도 파킨슨병과는 전혀 다른 유형의 떨림도 존재합니다.
떨림을 정확히 감별하려면 결국 의사가 진료실에서 떨림이 나타나는 시점과 양상을 직접 관찰해야만 가능합니다.
마치며이번 글에서는 파킨슨병의 떨림이 다른 떨림과 어떻게 다른지, 환자의 일상 속 어떤 순간에 모습을 드러내는지,
그리고 떨림이 없는 환자도 상당히 많다는 사실까지 살펴봤습니다.
지금까지 다룬 세 가지 변화 — 동작의 느려짐, 몸의 뻣뻣함, 가만히 있을 때의 떨림은 모두 팔다리와 손가락에서 나타나는 변화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더 지나면 환자의 몸에는 또 다른 결의 변화가 하나 더 찾아옵니다.
바로 균형을 잡고 서 있는 것 자체가 어려워지는 변화인데요, 다음 글에서 이 부분을 다루겠습니다.참고자료1차 사료 / 진단 기준
Postuma RB, Berg D, Stern M, et al. MDS clinical diagnostic criteria for Parkinson's disease. Mov Disord. 2015;30(12):1591-1601.
학술 2차 문헌
Helmich RC, Hallett M, Deuschl G, et al. Cerebral causes and consequences of parkinsonian resting tremor. Brain. 2012;135(11):3206-3226.
Hughes AJ, Daniel SE, Kilford L, Lees AJ. A clinicopathologic study of 100 cases of Parkinson's disease. Arch Neurol. 1993;50(2):140-148.
Jankovic J. Parkinson's disease: clinical features and diagnosis. J Neurol Neurosurg Psychiatry. 2008;79(4):368-3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