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구의 임상 인사이트 (8)
파킨슨병 원인 단백질의 숨겨진 역할
알파-시뉴클린, 처음부터 나쁜 단백질이었을까 — 신경세포 시냅스에서 일하는 작은 도우미지난 글에서는 1997년 두 연구팀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발견한 사실을 살펴봤습니다.
1912년 루이가 관찰했던 그 둥근 덩어리(루이소체)를 이루는 핵심 물질이 바로 '알파-시뉴클린(α-synuclein)'이라는 단백질이라는 사실이었죠.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이런 궁금증이 생깁니다.
"알파-시뉴클린은 처음부터 우리 몸에 해로운 단백질이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렇지 않습니다.
알파-시뉴클린은 모든 사람의 신경세포 안에 원래부터 존재하며, 매 순간 꼭 필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단백질입니다.
환자의 뇌에서만 발견되는 특별한 물질이 아니라, 건강한 사람의 뇌 속에서도 똑같이 자기 몫을 다하고 있는 단백질이라는 뜻입니다.
진짜 문제는 이 단백질이 어떤 계기로 모양이 잘못 바뀌기 시작할 때 생겨납니다.
이번 글에서는 형태가 어긋나기 이전, 즉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알파-시뉴클린'에 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신경세포는 어떤 방식으로 신호를 주고받을까요?알파-시뉴클린의 역할을 이해하려면 먼저 신경세포 사이의 신호 전달 방식을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의 뇌에는 약 860억 개에 달하는 신경세포가 있고, 이들은 각각 수많은 다른 신경세포와 이어져 신호를 주고받습니다.
그런데 신경세포끼리는 서로 직접 맞닿아 있지 않습니다. 두 신경세포 사이에는 아주 좁은 간격이 존재하는데, 이 부분을 시냅스(synapse)라고 부릅니다.
신호가 전달되려면 이 좁은 틈을 건너가야 합니다.
방법은 이렇습니다.
신호를 보내는 신경세포가 신경전달물질(neurotransmitter)이라는 화학 물질을 시냅스 공간으로 내보냅니다.
이 물질이 좁은 틈을 지나 맞은편 신경세포 표면에 도달하면, 그 신경세포가 신호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신경전달물질이 평소에 자유롭게 떠다니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신호를 보내기 전까지 신경전달물질은 작은 주머니 안에 담긴 채 보관됩니다.
이 주머니를 시냅스 소포(synaptic vesicle)라고 하는데, 일종의 작은 택배 상자라고 이해하시면 쉽습니다.
신호를 내보내야 하는 순간이 되면, 이 상자가 신경세포의 막까지 이동한 뒤 막과 하나로 합쳐지면서 안에 담긴 신경전달물질을 시냅스 공간으로 방출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 알파-시뉴클린이 관여합니다.

알파-시뉴클린이 일하는 자리 — 시냅스의 물류 시스템알파-시뉴클린은 뇌 안에 있는 여러 단백질 중에서도 특히 많은 양이 존재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자리 잡은 위치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신호를 내보내는 쪽 신경세포의 말단 부위(presynaptic terminal), 즉 앞서 말씀드린 택배 상자들이 모여 있는 바로 그곳에 풍부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단백질이 그 자리에서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는, 1988년 처음 발견된 이래 30여 년간 꾸준히 연구되어 왔습니다.
그 결과, 알파-시뉴클린이 시냅스의 물류 시스템 전반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여러 방면에서 돕고 있다는 사실이 점차 밝혀졌습니다.
알파-시뉴클린의 역할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택배 상자를 재활용하는 과정을 돕습니다
시냅스 소포는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일회용품이 아닙니다.
신경전달물질을 내보내고 비워진 상자는 다시 회수되어, 새로운 신경전달물질로 채워진 뒤 재사용됩니다.
신경세포가 활발히 활동할 때는 1초 사이에도 수십 차례 신호를 보내는 경우가 있어서, 이 재활용 과정이 끊임없이 원활하게 유지되어야 합니다.
알파-시뉴클린은 이 순환이 일정한 속도로 잘 이루어지도록 돕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마치 물류 창고에서 빈 상자를 재빨리 거두어 다시 채워 내보내는 관리자와 비슷한 셈입니다.
② 택배 상자가 열리는 순간을 곁에서 돕습니다
택배 상자가 신경세포 바깥 막에 다다르면, 막과 하나로 합쳐지면서 안에 담긴 신경전달물질이 시냅스 공간으로 쏟아져 나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막끼리 합쳐지는 과정은 저절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SNARE'라고 불리는 여러 단백질 부품이 마치 지퍼처럼 서로 맞물리면서 상자의 막과 세포의 막을 하나로 끌어당겨야 합니다.
알파-시뉴클린은 이 SNARE 부품들이 정확한 위치에서 제대로 맞물리도록 옆에서 보조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부품들이 빠르고 정밀하게 맞물려야 신호가 지체 없이 전달됩니다.
③ 신호의 강도를 조절합니다
신경세포는 언제나 똑같은 세기로 신호를 보내지 않습니다.
어떤 내용을 반복해서 떠올리거나 새로운 것을 배울 때, 그 신호를 담당하는 시냅스는 점점 강해지고 더 원활하게 전달됩니다.
반대로 자주 사용하지 않는 시냅스는 그 기능이 약해집니다.
다시 말해 시냅스는 사용 빈도에 따라 신호 전달 능력이 변화하는데, 이를 학술적으로 '시냅스 가소성'이라고 부릅니다.
알파-시뉴클린은 이런 미세한 강도 조절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억이 형성되고 학습이 뇌에 새겨지는 과정에,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이 작은 단백질이 일정 부분 기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알파-시뉴클린은 신경세포 사이의 신호 전달이 끊이지 않고, 알맞은 강도로,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도록 돕는 시냅스의 보조자 역할을 하는 단백질입니다.왜 이 단백질은 '유연한' 구조로 만들어졌을까요알파-시뉴클린에는 다른 단백질들과 구별되는 흥미로운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대개의 단백질은 만들어지고 나면 특정한 입체 구조로 정교하게 접힙니다.
그리고 그렇게 접힌 형태가 곧 그 단백질의 기능을 결정합니다.
하지만 알파-시뉴클린은 정상 상태에서는 이런 고정된 입체 구조를 갖지 않습니다.
특정한 형태 없이 유연한 상태로 존재합니다.왜 이런 구조를 갖게 되었을까요?시냅스라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다양한 상황—택배 상자가 떠 있을 때, 막 가까이 다가갈 때, 다른 단백질과 협력할 때 등—에 유연하게 대응하며 일하기 위해서라고 추정됩니다.
하나의 형태에 고정되기보다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변할 수 있는 편이, 이런 환경에서는 더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유연성에는 양면이 있습니다.
유연하다는 것은 곧 다른 형태로도 접힐 여지가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정상적인 환경에서는 이 유연성이 시냅스 활동에 도움이 되지만, 어떤 이유로 그 환경이 무너지면 같은 유연성으로 인해 잘못된 형태로 접힐 가능성이 생깁니다.
그리고 잘못 접힌 알파-시뉴클린은 이전과는 정반대의 작용을 하기 시작합니다.
'원래 나쁜 단백질'이 아니라 '문제가 생긴 단백질'여기까지 살펴보면, 알파-시뉴클린에 대한 인식이 처음과는 조금 달라지셨을 것입니다.
이 단백질은 환자의 뇌에서만 나타나는 특별한 물질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의 신경세포 안에 풍부하게 존재하면서 시냅스의 신호 전달을 돕는, 반드시 필요한 단백질입니다.
만약 알파-시뉴클린이 전혀 없다면 신경세포는 제대로 기능할 수 없습니다.
파킨슨병에서 진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알파-시뉴클린이라는 단백질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이 단백질이 어떤 이유로 모양이 잘못 접히기 시작하는 그 과정입니다.
즉 '나쁜 단백질이 새로 생겨났다'기보다는 '원래 필요했던 단백질에 이상이 생겼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이 차이는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단순히 특정 물질을 없앤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단백질이 정상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올바른 형태를 유지하고, 잘못 접힌 단백질을 제거하는 시스템이 원활히 작동하는 환경—을 지켜내는 것이 치료 연구의 핵심 과제가 되는 것입니다.
마치며그렇다면 정상적으로 잘 기능하던 이 단백질은 어떤 이유로 잘못 접히기 시작하는 걸까요?
무엇이 정상적인 환경을 무너뜨리고, 같은 단백질을 정반대의 역할을 하도록 만드는 걸까요?
이 물음은 다음 글에서 이어가겠습니다.참고자료학술 2차 문헌
Bendor JT, Logan TM, Edwards RH. The function of α-synuclein. Neuron. 2013;79(6):1044-1066.
Burré J. The synaptic function of α-synuclein. J Parkinsons Dis. 2015;5(4):699-713.
Südhof TC. The presynaptic active zone. Neuron. 2012;75(1):11-25.
1차 사료(배경)
Maroteaux L, Campanelli JT, Scheller RH. Synuclein: a neuron-specific protein localized to the nucleus and presynaptic nerve terminal. J Neurosci. 1988;8(8):2804-2815. (알파-시뉴클린이 처음 발견된 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