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ram Health Column

메디람 건강칼럼

파킨슨병 유전 가족력 없어도 걸리는 이유
2026. 07. 08

닥터 구의 임상 인사이트 (7)
파킨슨병과 루이소체 치매를 잇는 단백질 하나의 이야기

1997년, 85년 묵은 수수께끼가 풀리다 — 루이소체의 정체는 '알파-시뉴클린'


85년 동안 이름이 없었던 덩어리

1912년, 독일 베를린의 의사 프리드리히 루이는 현미경으로 환자의 뇌 조직을 들여다보다가 특이한 둥근 덩어리를 발견했습니다.
이 덩어리에는 나중에 그의 이름을 딴 '루이소체(Lewy body)'라는 명칭이 붙게 됩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 덩어리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왜 생기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습니다.
당시 현미경으로는 덩어리의 존재와 대략적인 형태만 확인할 수 있었을 뿐, 그것을 구성하는 성분(어떤 물질로 이루어져 있는지)까지는 분석할 수 없었습니다.
이 답 없는 상태가 무려 85년이나 이어졌습니다.





1997년, 두 팀이 동시에 답을 찾다

그러다 1997년, 놀랍게도 서로 전혀 다른 곳에서 연구하던 두 팀이 몇 달 간격을 두고 각각 같은 결론에 도달합니다.
그 결론의 이름은 알파-시뉴클린(α-synuclein), 신경세포 안에 있는 하나의 단백질이었습니다.



첫 번째 팀: 가족력이 있는 환자들에서 출발 (미국)

1997년 6월,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폴리메로풀로스 박사 연구팀은 조금 특별한 환자 가족들을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남부와 그리스의 몇몇 가족인데, 이 가족들은 유독 젊은 나이에 파킨슨병이 생기고, 그 병이 부모에서 자녀로 대물림되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보통 파킨슨병은 특별한 유전 없이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이 가족들은 달랐습니다. 뭔가 유전자에 원인이 있어 보였습니다.


연구팀이 이 가족들의 유전자를 분석해 보니, SNCA라는 유전자에서 이상(돌연변이)이 발견되었습니다.
SNCA는 우리 몸에서 알파-시뉴클린이라는 단백질을 만들어내라는 정보를 담고 있는 유전자입니다.
이 유전자에 이상이 생기면, 그 정보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알파-시뉴클린 단백질도 정상과 다른 모양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만들어진 단백질이 신경세포 안에 점점 쌓이게 됩니다.


즉, "이 가족들은 왜 파킨슨병에 걸렸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SNCA 유전자 이상 때문"이라는 답을 찾은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궁금증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럼 1912년에 루이가 봤던 그 둥근 덩어리는 이거랑 무슨 상관이지?"





두 번째 팀: 루이소체 자체를 분석 (영국)

거의 같은 시기, 영국 케임브리지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팀이 있었습니다.
스필란티니 박사 연구팀입니다.
이 팀은 유전자가 아니라, 루이소체 자체를 붙잡고 분석했습니다.
"이 덩어리 안에 도대체 뭐가 들어 있길래 뭉쳐 있는 거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1997년 8월, 이들은 Nature라는 학술지에 짧은 연구 결과를 발표합니다.
결론은 이랬습니다. 루이소체를 이루는 핵심 재료가 바로 알파-시뉴클린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미국 팀이 찾은 그 단백질과 정확히 똑같은 이름이었습니다.





두 발견이 만나 완성된 하나의 이야기

두 팀은 서로 연락도 하지 않은 채,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연구를 진행했지만 결국 같은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미국 팀은 유전자 분석에서 시작했고, 영국 팀은 루이소체 자체의 분석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두 팀의 결과가 모두 알파-시뉴클린이라는 같은 단백질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이 두 발견을 이어 붙이면, 병이 진행되는 과정이 하나의 흐름으로 정리됩니다.


1. SNCA 유전자에 이상이 생긴다
2. → 알파-시뉴클린 단백질이 비정상적인 모양으로 만들어진다
3. → 이 단백질이 신경세포 안에 계속 쌓인다
4. → 쌓인 단백질 덩어리가 루이소체를 만든다
5. → 루이소체 때문에 신경세포가 손상되고, 파킨슨병 증상이 나타난다


1912년에는 그저 "뇌 속에 이상한 덩어리가 있다"까지만 알았다면,
1997년에는 "그 덩어리의 정체가 무엇이고, 왜 생기는지"까지 알게 된 것입니다.





드문 가족 사례가 왜 모든 환자에게 중요할까

여기서 궁금한 점이 하나 생길 수 있습니다.

미국 팀이 조사한 가족들은 유전으로 대물림되는 '가족성 파킨슨병'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경우는 전체 파킨슨병 환자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대부분의 환자(약 90% 이상)는 특별한 가족력 없이 갑자기 파킨슨병에 걸리는 '산발성 파킨슨병'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드문 가족 사례를 연구한 게, 훨씬 더 많은 산발성 환자들에게도 의미가 있을까요?


답은 "그렇다"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가족성 환자들의 유전자 이상 때문에 만들어지는 단백질과, 산발성 환자들의 뇌 속 루이소체를 이루는 단백질이 완전히 같은 알파-시뉴클린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드문 유전 사례를 연구한 결과가 훨씬 많은 일반 환자들에게도 적용되는 공통의 원인 물질을 찾아낸 셈이 되었습니다.
이후 2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알파-시뉴클린은 파킨슨병 치료제 개발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이 단백질이 쌓이는 것을 막거나, 이미 쌓인 단백질을 제거하는 치료법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파킨슨병 연구의 네 갈래 이정표

- 1817년 — 증상을 처음 정리함 (제임스 파킨슨)
- 1872년 — 병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이름 붙임 (샤르코)
- 1912년 — 뇌 속에서 이상한 덩어리를 발견함, 그러나 정체는 몰랐음 (루이)
- 1997년 — 그 덩어리의 정체와 발생 원인을 분자 단위로 밝혀냄 (폴리메로풀로스, 스필란티니)


1997년 이전까지는 증상과 뇌 속 흔적은 알아도, "정확히 무엇이 병을 일으키는가"라는 핵심 질문에는 답이 없었습니다.
1997년의 두 연구가 바로 그 빈칸에 알파-시뉴클린이라는 이름을 채워 넣은 것입니다.





마치며 — 알파-시뉴클린은 원래 '나쁜 단백질'이 아닙니다

한 가지 오해하기 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알파-시뉴클린이 파킨슨병과 관련 있다고 해서, 이 단백질 자체가 원래부터 몸에 해로운 물질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실 알파-시뉴클린은 건강한 사람의 신경세포 안에도 원래부터 존재하며, 신경세포가 제대로 작동하는 데 필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단백질은 평소에는 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걸까요? 이 질문은 다음 글에서 계속 다루겠습니다.



참고자료

1차 사료
- Polymeropoulos MH, Lavedan C, Leroy E, et al. Mutation in the alpha-synuclein gene identified in families with Parkinson's disease. Science. 1997;276(5321):2045-2047.
- Spillantini MG, Schmidt ML, Lee VM, Trojanowski JQ, Jakes R, Goedert M. Alpha-synuclein in Lewy bodies. Nature. 1997;388(6645):839-840.

학술 2차 문헌
- Goedert M, Spillantini MG, Del Tredici K, Braak H. 100 years of Lewy pathology. Nat Rev Neurol. 2013;9(1):1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