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구의 건강 칼럼 (22)
파킨슨병 가족력이 있다면 이 네 가지 변화를 지켜보세요
미리 나타나는 신호를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 — 뇌가 버텨 준 시간이 알려 주는 것바로 앞 글에서는 알파-시뉴클린이 흑색질 안까지 밀려든 다음에도 왜 한동안 몸의 움직임에는 별다른 이상이 보이지 않는지,
그 뒤에 놓인 세 가지 보상 기전을 함께 짚었습니다.
그 논의가 남긴 결론은 짧게 요약됩니다.
몸의 움직임에 처음 문제가 느껴질 무렵이면 흑색질 속 도파민 신경세포는 벌써 절반 이상 자취를 감춘 뒤입니다.
그러니 진단서에 적히는 날짜는 병이 시작된 날이 아니라, 뇌가 그동안 메워 오던 손실을 더는 감당하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내 버린 경계선에 해당합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질문이 생깁니다.
뇌가 조용히 버텨 주던 그 기간에 환자와 가족이 몸의 달라짐을 먼저 알아봤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그리고 그런 알아차림은 뒤이어 올 환자들에게 어떤 것을 남겨 줄 수 있을까요.
이번 글에서 그 답을 정리해 보려 합니다.
조기 발견 연구가 왜 중요한가먼저 의학 연구가 서 있는 자리를 짚어 두겠습니다.
아직까지 파킨슨병의 진행을 완전히 세우거나 잃어버린 기능을 되돌려 놓는 치료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진단 후 사용하는 표준 치료들은 움직임의 어려움을 눈에 띄게 줄여 주어 하루하루를 꾸려 가도록 뒷받침하지만,
알파-시뉴클린이 변성되는 과정을 붙잡아 두거나 이미 무너지고 있는 도파민 신경세포를 회복시키는 데까지는 미치지 못합니다.
그래도 세계 여러 나라의 신경학·신경과학 연구자들은 20년이 훌쩍 넘도록 같은 목표를 놓지 않았습니다.
신경세포가 죽어 가는 속도를 늦추거나 아예 세워 버리는 약, 흔히 '질병 조절 치료(disease-modifying therapy)'라 불리는 치료를 손에 넣는 일입니다.
여러 연구가 거듭 확인해 준 사실이 있습니다.
그런 약이 언젠가 완성된다면, 그 약이 가장 큰 힘을 낼 시기는 신경세포가 아직 여유 있게 남아 있는 때라는 것입니다.
움직임에 이상이 생긴 뒤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앞서 뇌의 보상이 한창 작동하고 있는 기간을 말합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오늘날 세계에서 진행 중인 굵직한 임상 연구들 중 상당수가 아직 운동 증상이 없는 사람들을 살펴봅니다.
RBD가 있는 이들을 여러 해 동안 따라가며 관찰하거나, 후각 검사와 혈액 표지자 같은 여러 지표를 겹쳐 위험이 높은 이들을 앞서 추려 내는 식입니다.
그렇게 보면 변비나 후각 상실, RBD 같은 신호를 의학의 눈으로 읽어 내려는 노력은 학문적 궁금증을 채우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언젠가 현실이 될 이른 치료가 딛고 설 바닥을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그러나 신호만으로는 병이 정해지지 않습니다가능성 이야기 곁에는, 지금까지 되풀이해 말씀드린 사실도 함께 놓여야 합니다.
앞서 나타나는 신호들만으로 파킨슨병이 확진되는 일은 없습니다.
냄새를 맡는 능력은 나이가 들면서도 무뎌지고, 만성 비염이 있어도, 코로나19를 앓고 난 뒤에도 떨어집니다.
변비는 무엇을 먹는지, 얼마나 움직이는지, 어떤 약을 복용 중인지, 위장에 다른 문제가 있는지에 따라 무척 흔하게 나타납니다.
잠결의 움직임 또한 흔한 잠꼬대나 수면 무호흡, 다른 여러 수면 질환에서 비슷한 모습으로 관찰될 수 있습니다.
미리 나타나는 신호는 '이미 정해진 결과'가 아니라 '가능성을 알리는 표시' 정도로 읽는 것이 알맞습니다.
표시가 하나 보인다고 훗날의 발병이 결정되지는 않으며,
앞에서 살펴본 보상 기전이 그만큼 넉넉하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같은 신호를 지녔더라도 이후에 걸어갈 길은 사람마다 상당히 다를 수 있습니다.
신호가 지닌 의학적 값을 인정하면서도 그 이상으로 부풀려 읽지 않는 것.
이 두 축의 균형이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요령입니다.
가족 중에 같은 병을 앓는 분이 있다면한 가지 따로 말씀드릴 부분이 있습니다. 가까운 가족 가운데 파킨슨병 환자가 계신 분들의 경우입니다.
이때 가족력은 두 방향의 뜻을 지닙니다.
먼저, 후각이 천천히 무뎌지거나 변비가 오래 이어지거나 잠자는 동안의 행동이 달라지는 것처럼 비슷한 신호가 자신에게 찾아왔을 때,
그 뜻을 곧바로 알아볼 기본 지식을 갖추게 된다는 점입니다.
한편으로, 가족력이 곧 본인의 발병을 못 박아 두지는 않는다는 점도 분명합니다.
파킨슨병의 대다수는 유전자 하나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살아온 환경과 나이 듦, 그리고 여러 유전적 요소가 서로 얽혀 작용한 끝에 나타나며,
집안에 환자가 있더라도 본인의 위험은 그렇지 않은 분들보다 어느 정도 올라갈 뿐 그 자체로 큰 수치는 아닙니다.
그래서 가족력이 있는 분들께는 걱정을 키우기보다 자기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평소보다 조금 더 촘촘히 살펴 두시기를 권합니다.
어떤 변화가 여러 해에 걸쳐 서서히 이어지는데 뚜렷한 다른 이유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면,
건강검진이나 주치의를 만나는 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한 번쯤 꺼내 보셔도 좋습니다.
환자와 가족이 지금 해 볼 수 있는 일앞서 다룬 이야기를 생활 속에서 쓸 수 있게 네 가지로 간추려 봅니다.
① 변화가 어떤 흐름으로 이어지는지 살핍니다.
며칠 이어진 변비나 몇 번의 잠꼬대, 어느 한 해의 후각 변화처럼 따로 떨어진 사건이 아니라, 몇 년에 걸쳐 조금씩 이어지는 흐름이 있는지를 봅니다.
낱개의 일보다 되풀이되는 흐름 쪽이 의학적으로 읽을 만한 신호가 됩니다.
② 흔한 이유로 설명되지 않는 변화는 의료진과 이야기해 봅니다.
식단을 바꾸고 일반적인 약을 써도 변비가 그대로이거나, 코와 부비동을 치료했는데도 냄새를 맡는 능력이 돌아오지 않거나,
배우자가 잠결의 행동 변화를 여러 차례 지켜봤다면 — 그 변화가 무엇을 뜻하는지 검진이나 진료 때 꺼내 볼 수 있습니다.
③ 가족이 함께 알아봅니다.
RBD처럼 정작 본인은 알아차리기 힘든 신호도 있어, 옆에서 함께 잠드는 가족의 관찰이 가장 값진 단서가 되곤 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내용은 환자 한 사람보다 한집에 사는 가족이 같이 알고 있을 때 훨씬 쓸모가 큽니다.
④ 스스로 진단을 내리지는 않습니다.
진단은 결국 신경과 전문의가 여러 정보를 모아 판단해야 마무리됩니다.
신호 한둘을 근거로 혼자 결론짓기보다, 이런 변화를 의료진과 함께 들여다보는 편이 가장 안정적인 태도입니다.
여기까지 걸어온 길그동안의 글들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이어졌습니다.
파킨슨병이 뇌가 아니라 변방에서 출발할 수 있다는 이중 타격 가설
장에서 뇌로 향하는 첫 번째 침입 경로(미주신경)
코에서 뇌로 향하는 두 번째 침입 경로(후각 신경)
운동 증상보다 한참 앞서 보일 수 있는 네 가지 신호 — 변비·후각 상실·우울증·RBD
그 긴 세월 동안 뇌가 말없이 견뎌 내는 세 가지 보상 기전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를 환자와 가족이 알아 두어야 하는 이유
지금까지 알파-시뉴클린이 변방에서 길을 떠나 마침내 뇌의 흑색질에 닿기까지의 여정을 함께 따라왔습니다.
그렇다면 그 종착지인 흑색질은 대체 어떤 부위이며, 거기서 만들어지는 도파민은 우리 몸 안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요.
도파민이 모자라지면 떨림과 느려진 동작, 굳어 버린 자세, 자꾸 빨라지는 걸음처럼 익숙한 파킨슨병 증상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생겨나는 걸까요.
이어질 글들에서 그 답을 본격적으로 찾아가겠습니다.참고자료전구 PD 진단 기준 (MDS)
Berg D, Postuma RB, Adler CH, et al. MDS research criteria for prodromal Parkinson's disease. Mov Disord. 2015;30(12):1600-1611.
Heinzel S, et al. Update of the MDS research criteria for prodromal Parkinson's disease. Mov Disord. 2019;34(10):1464-1470.
학술 2차 문헌
Postuma RB, Berg D. Advances in markers of prodromal Parkinson disease. Nat Rev Neurol. 2016;12(11):622-634.
Schapira AHV, Chaudhuri KR, Jenner P. Non-motor features of Parkinson disease. Nat Rev Neurosci. 2017;18(7):435-450.
환자 교육 기관 자료
Parkinson's Foundation — Early signs of Parkinson's disea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