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ram Health Column

메디람 건강칼럼

파킨슨병 진행속도가 빨라진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
2026. 08. 06

닥터 구의 건강 칼럼 (21)
파킨슨병 진행속도 증상이 나타날 땐 이미 도파민 신경세포 절반이 사라진 뒤?

뇌는 언제까지 견뎌 내는가 — 보상이라는 이름의 세월


지난 연재에서는 몸의 움직임에 이상이 드러나기 훨씬 이전 단계에서 확인될 수 있는 세 가지 조짐 —
배변의 어려움, 냄새를 맡는 능력의 저하, 그리고 꿈을 꾸는 동안 몸이 따라 움직이는 REM 수면 행동장애 — 를 차례로 다뤘습니다.


이 조짐들이 가리키는 결론은 하나로 모입니다.
알파-시뉴클린의 구조 이상과 그에 따른 신경세포의 훼손이, 떨림이나 느려짐 같은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보다 훨씬 앞서,
길게는 수십 년 전부터 조용히 진행되어 왔을 가능성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물음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그토록 긴 세월 동안, 환자분의 뇌는 무엇에 기대어 견뎌 온 것일까요?


말초의 신경계에서 출발한 알파-시뉴클린이 뇌줄기를 지나 흑색질까지 서서히 밀고 올라오는 동안에도
어째서 환자분은 오랫동안 몸의 달라짐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일까요?
이번 글에서 다룰 내용입니다.





출발점이 되는 사실 — 절반 넘게 잃은 뒤에야 증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물음에 답하려면,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발견이 하나 있습니다.


파킨슨병의 운동 증상이 환자분에게 처음으로 나타나는 그 시점에,
해당 환자분의 흑색질에서는 도파민 신경세포가 이미 절반에서 많게는 70% 가까이 사라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여러 편의 부검 연구와 영상 검사 연구를 통해 거듭 뒷받침되어 왔습니다.


이 내용은 1991년 영국의 신경과 의사인 페른리(Fearnley)와 리스(Lees)가 학술지 Brain에 실은 부검 연구에서 처음으로 뚜렷하게 정리되었으며,
그 이후 여러 후속 연구에서도 같은 결과가 되풀이해 확인되었습니다.


바꿔 말하면 이렇습니다.
알파-시뉴클린이 흑색질에 닿은 순간부터 실제로 손이 떨리거나 걸음이 달라지기까지 흑색질의 도파민 신경세포가 절반 넘게 사라져 가는 그 기간 내내
환자분은 별다른 자각 없이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요?
뇌에는 잃어버린 기능을 스스로 메우는 세 가지 방식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보상 — 남아 있는 세포들의 초과 근무

도파민 신경세포가 하나씩 둘씩 사라지기 시작하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세포들이 그 빈자리를 메우려고 평소보다 훨씬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살아남은 세포들은 도파민을 더 많이 만들어 내고, 만들어 낸 양을 시냅스 틈으로 더 넉넉하게 내보냅니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비우는데도, 남아 있는 사람들이 그 몫까지 나눠 맡아 밤늦게까지 처리해 내는 사무실 풍경을 떠올리시면 이해가 쉽습니다.


이것이 흑색질의 도파민 체계가 지닌 가장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대응 능력입니다.
부서 인원이 절반 아래로 줄어들더라도 남은 사람들이 두 배로 일해 준다면 바깥에서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한동안 예전과 비슷한 양의 업무가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두 번째 보상 — 신호를 받는 쪽의 감도가 올라간다

두 번째 방식은 신호를 내보내는 쪽이 아니라, 그 신호를 건네받는 쪽에서 일어납니다.


시냅스 틈으로 나온 도파민은 이어지는 신경세포의 표면에 자리한 도파민 수용체와 만나면서 신호로 전달됩니다.
이 수용체는 본래 일정한 농도의 도파민에 반응하도록 맞춰져 있습니다.


그런데 도파민의 양이 오랜 기간에 걸쳐 조금씩 줄어들면, 받는 쪽 세포도 그 상황에 맞춰 스스로를 조정합니다.
수용체가 예민해져서 전보다 적은 양의 도파민만으로도 필요한 신호를 충분히 읽어 낼 수 있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수용체의 개수 자체가 늘어나기도 합니다.


불이 꺼진 방에 한참 머물다 보면 눈동자가 커지고 망막의 감도가 높아져, 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흐릿한 빛 속에서도 차츰 물건의 윤곽이 잡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들어오는 신호의 총량 자체는 분명히 줄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쪽이 훨씬 알뜰하게 활용하게 되는 셈입니다.





세 번째 보상 — 끊어진 길을 대신할 새 길이 난다


세 번째 방식은 신경세포가 지닌 능력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것에 속합니다.


도파민 신경세포가 죽으면, 그 세포가 다른 세포들과 이어져 있던 시냅스의 통로도 함께 끊깁니다.
그런데 이때 — 아직 손상되지 않은 주변의 도파민 신경세포들이 새로운 가지를 내밀어, 끊어져 버린 연결을 대신 이어 주기 시작합니다.


의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축삭 발아(axonal sprouting)라고 부릅니다.
나무가 한쪽 가지를 잃었을 때 남은 가지들에서 새잎이 돋아 그 빈자리를 채우려 하듯이
살아남은 신경세포가 가지를 더 뻗어, 끊긴 신호 전달 경로의 일부를 대신 떠맡는 것입니다.


물론 이 보상이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새로 만들어진 길이 본래의 정교한 연결을 그대로 되살려 내지는 못합니다.
그렇지만 일정한 수준까지는 신경망 전체의 기능을 지탱해 주는 역할을 해냅니다.



이 버팀이 알려 주는 것, 그리고 버팀이 끝나는 지점

이 세 가지 방식 덕분에, 알파-시뉴클린이 흑색질에 이른 뒤에도 환자분은 한동안 일상에 큰 지장 없이 지낼 수 있습니다.
뇌가 손상 앞에서 그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가진 적응 능력을 남김없이 끌어모아 조용히 자리를 지켜 준다는 뜻입니다.


이 사실은 환자분과 보호자분께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전해 줍니다.


첫째, 운동 증상을 처음으로 느끼기 시작한 그 시점에 이미 뇌 안의 도파민 체계는 절반 이상 허물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손이 처음 떨렸거나 걸음이 눈에 띄게 무거워진 그 변화는 "지난주에 갑자기 생긴" 일이 아니라,
수년에서 십수 년에 걸쳐 묵묵히 버텨 오던 뇌가 마침내 보상의 한계선에 닿았음을 보여 주는 결과입니다.
진단을 받은 날은 병이 시작된 날이 아니라, 보상만으로는 더 이상 손실을 가려 줄 수 없게 된 날이라고 이해하시는 편이 정확합니다.


둘째, 보상은 끝없이 이어질 수 없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도파민 신경세포가 더 많이 사라지면, 남은 세포들의 초과 근무도, 수용체의 높아진 감도도,
새로 뻗은 가지들도 어느 순간부터는 모자란 부분을 더 이상 채워 내지 못합니다.
그 한계에 닿는 지점 — 바로 그때가 환자분이 처음으로 운동 증상을 자각하는 시점입니다.
그리고 이후에도 병이 조금씩 진행되면서 남아 있는 보상의 여유분은 차츰 얇아져 갑니다.





글을 맺으며

증상이 겉으로 드러나기 한참 전부터 이어져 온 변성, 그리고 그 변성에 맞서 뇌가 말없이 버텨 온 세 가지 방식.
이 둘은 같은 그림을 앞뒤에서 바라본 것입니다. 환자분의 뇌는 손상을 일방적으로 감당하기만 하는 수동적인 기관이 아니라,
지닌 능력을 끝까지 동원해 일상을 지켜 내려는 대단히 능동적인 체계라는 사실이 의학적으로 분명해졌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 가지 시사점이 따라 나옵니다.
그 보상의 세월 — 수년에서 십수 년에 이르는 그 조용한 시간 — 이 어쩌면 의학적으로 대단히 소중한 기간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 시간 안에서 환자분과 가족분들이 몸의 달라짐을 일찍 알아차리고 의료진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그것이 앞으로의 경과에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가 다음 글에서 다룰 이야기입니다.



참고자료


1차 사료 / 핵심 임상·연구
Fearnley JM, Lees AJ. Ageing and Parkinson's disease: substantia nigra regional selectivity. Brain. 1991;114(5):2283-2301. (부검 연구를 통한 흑색질 도파민 신경세포 손실과 운동 증상 발현 관계의 정량 분석)

보상 기전 종합 문헌
Zigmond MJ, Abercrombie ED, Berger TW, et al. Compensations after lesions of central dopaminergic neurons: some clinical and basic implications. Trends Neurosci. 1990;13(7):290-296.
Bezard E, Gross CE. Compensatory mechanisms in experimental and human parkinsonism: towards a dynamic approach. Prog Neurobiol. 1998;55(2):93-116.

축삭 발아 실험 연구
Finkelstein DI, Stanic D, Parish CL, et al. Axonal sprouting following lesions of the rat substantia nigra. Neuroscience. 2000;97(1):99-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