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ram Health Column

메디람 건강칼럼

파킨슨병 원인 흑색질 도파민이 줄어들면 생기는 일
2026. 08. 10

닥터 구의 건강 칼럼 (23)
손떨림과 느린 걸음의 원인 — 파킨슨병과 흑색질 도파민

흑색질 — 알파-시뉴클린의 종착역이자, 뇌가 도파민을 빚어내는 자리


장과 코. 우리 몸이 바깥 환경과 직접 맞닿는 두 곳입니다.
그동안의 글에서 우리는 알파-시뉴클린이라는 단백질이 바로 이 두 변방에서 출발해,
신경이 이어 놓은 길을 타고 뇌 깊은 곳까지 서서히 거슬러 오른다는 가설을 짚어 왔습니다.
그리고 그 여정이 어디에서 멈추는가 하는 물음이 늘 뒤에 남아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답을 마주할 차례입니다.
뇌 중심부 깊숙한 자리에, 이웃한 조직들과 달리 어둡게 물들어 보이는 작은 영역이 하나 있습니다.
흑색질(黑色質, Substantia Nigra)이라 부르는 곳입니다.


이번 글에서 다룰 내용은 세 가지입니다.
이 영역이 뇌의 어디쯤 놓여 있는가, 왜 하필 '검은 물질'이라는 이름이 붙었는가, 그리고 무슨 이유로 이곳이 파킨슨병의 핵심 무대가 되는가.





중뇌 속, 동전만 한 영역


자리부터 확인해 보겠습니다. 흑색질이 있는 곳은 중뇌(midbrain)입니다.
크기로 따지면 뇌 전체에서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좌우로 하나씩 놓여 있는데, 두 개를 모두 더해도 동전 한두 개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토록 작은 영역이 몸 전체의 움직임을 좌우한다는 것이 의아하게 느껴지실 수도 있습니다.
이유는 이 안에 도파민(Dopamine)을 생산하는 신경세포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는 데 있습니다.
도파민은 동작을 부드럽고 정밀하게 만들어 주는 물질입니다.
이 물질이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는 다음 글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겠습니다.


실제 생활로 옮겨 놓고 보면 이야기가 한층 분명해집니다.
눈을 뜨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동작, 컵을 쥐어 입으로 옮기는 동작, 한 발 앞으로 내딛는 동작,
펜을 쥐고 글자를 써 내려가는 동작, 얼굴 근육을 써서 웃거나 찡그리는 동작.
평소에는 의식조차 하지 않는 이런 움직임들이 매끄럽게 이어지려면, 흑색질에서 만들어진 도파민이 빠짐없이 공급되어야 합니다.
한쪽 흑색질의 좁은 영역에 자리한 신경세포들이 한 사람의 일상적 동작 대부분을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파킨슨병에서 이 영역의 도파민 신경세포가 알파-시뉴클린에 침범당해 차례로 사라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운동 증상이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떨리는 손, 느려진 걸음, 표정 없이 굳어 가는 얼굴, 점점 작아지는 글씨.
이 모든 변화가 작고 어두운 이 한 영역에서 벌어진 사건에서 비롯됩니다.





이름에 담긴 색소 이야기

뇌를 열어 단면을 살펴보면 조직 대부분은 회백색을 띱니다.
그 가운데 중심부 부근에서 유독 검게 두드러지는 영역이 나타납니다.
회색 도자기 위에 검은 점 하나를 찍어 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이 검은 부분이 흑색질입니다.


검게 보이는 이유는 색소에 있습니다.
흑색질 신경세포 내부에 뉴로멜라닌(neuromelanin)이라는 짙은 색소가 축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뉴로멜라닌은 단지 색을 내기 위해 존재하는 물질이 아닙니다.
신경세포가 도파민을 합성하고 분해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생겨나는 부산물이지요.
그러니 도파민을 많이 취급하는 세포일수록 그 내부에 뉴로멜라닌이 더 많이 남게 됩니다.


여기서 결론은 하나로 모입니다.
흑색질이 검다는 사실 자체가, 이곳이 뇌에서 도파민을 만들어 내는 중심 공간이라는 가장 뚜렷한 증거라는 것입니다.
주변 조직은 회백색인데 이 부위만 색이 짙다면, 그것은 여기서 도파민 생산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병이 진행되어 도파민 신경세포가 죽어 나가면 뉴로멜라닌도 덩달아 줄어듭니다.
실제로 파킨슨병 환자분의 뇌를 부검해 보면 흑색질 색깔이 건강한 뇌보다 훨씬 옅어져 있습니다.
도파민을 활발히 만들어 내던 세포들이 자리를 비운 흔적이지요.
색이 옅어진 만큼 그분의 운동 능력도 함께 옅어졌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반가운 이야기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이제는 이런 변화를 살아 계신 환자분의 뇌에서도 영상으로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최근 20년 사이에 발전해 온 신경멜라닌 자기공명영상(Neuromelanin MRI, NM-MRI)이 그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건강한 분에서는 흑색질이 밝고 선명한 신호로 잡히는 반면, 파킨슨병 환자분에서는 그 신호가 희미해지거나 일부 구역이 통째로 보이지 않게 됩니다.
과거에는 부검대 위에서만 확인할 수 있던 소견을, 지금은 살아 있는 뇌에서 영상으로 마주할 수 있게 된 셈입니다.


(물론 NM-MRI가 모든 병원에서 표준적으로 시행되는 검사는 아직 아닙니다.
임상 진단을 뒷받침하는 보조적 도구로 쓰이는 단계이며, 진단의 중심축은 지금도 신경과 전문의의 임상 평가에 있습니다.)





치밀부와 망상부, 둘로 나뉜 흑색질

흑색질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영역이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성격이 서로 다른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① 흑색질 치밀부 (Substantia Nigra pars compacta, SNc)

도파민을 생산하는 세포들이 조밀하게 모여 있는 부분입니다.
'치밀부'라는 명칭 자체에 세포가 촘촘히 들어차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사람의 경우 한쪽 치밀부에 도파민 신경세포가 약 40만~60만 개가량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파킨슨병에서 알파-시뉴클린 때문에 망가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 치밀부입니다.
앞선 글들에서 줄곧 뒤따라온 알파-시뉴클린의 여정은 정확히 이 자리에서 마침표를 찍습니다.


② 흑색질 망상부 (Substantia Nigra pars reticulata, SNr)

치밀부 아래쪽에 놓여 있으며, 도파민이 아닌 다른 신경전달물질을 내보내는 세포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맡은 일은 운동 명령을 미세하게 가다듬는 것입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파킨슨병에서 망상부는 그 자체로 손상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다만 치밀부에서 넘어오던 도파민이 줄어들면, 망상부 또한 원래대로 작동할 수 없게 됩니다.


두 부분은 결국 한 조를 이루어 일하는 셈입니다.
치밀부가 도파민을 생산해 망상부로 전달하고, 망상부는 그 도파민을 바탕으로 운동 명령을 정밀하게 조율합니다.
치밀부의 도파민 신경세포가 죽기 시작하면 망상부의 업무도 함께 어그러지고, 그 결과가 환자분이 매일 체감하는 움직임의 변화로 드러나게 됩니다.





다음 이야기를 앞두고

여기까지 흑색질이라는 이름의 뜻과 그 위치, 그리고 도파민 생산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함께 짚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흑색질이 만들어 낸 도파민은, 우리가 움직이는 동안 실제로 어떤 일을 맡고 있을까요.
겉보기에 간단한 동작 하나에도 뇌 안에서는 대단히 정교한 회로가 함께 작동한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그 운동 회로를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살펴보려 합니다.



참고자료

해부·병리 분야 주요 원저
Damier P, Hirsch EC, Agid Y, Graybiel AM. The substantia nigra of the human brain. Brain. 1999;122(8):1421-1436. (흑색질 해부에 관한 표준 reference)
Zecca L, Tampellini D, Gerlach M, et al. Substantia nigra neuromelanin: structure, synthesis, and molecular behaviour. Mol Pathol. 2001;54(6):414-418. (뉴로멜라닌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구조를 갖는지)
Pakkenberg B, Møller A, Gundersen HJ, et al. The absolute number of nerve cells in substantia nigra in normal subjects and in patients with Parkinson's disease. J Neurol Neurosurg Psychiatry. 1991;54(1):30-33. (흑색질 도파민 신경세포 개수를 정량화한 연구)


리뷰 문헌
Braak H, Del Tredici K, Rüb U, et al. Staging of brain pathology related to sporadic Parkinson's disease. Neurobiol Aging. 2003;24(2):197-211.


영상의학 (NM-MRI)
Sasaki M, Shibata E, Tohyama K, et al. Neuromelanin magnetic resonance imaging of locus ceruleus and substantia nigra in Parkinson's disease. NeuroReport. 2006;17(11):1215-1218. (NM-MRI를 파킨슨병 환자에게 처음 적용한 일본 연구팀의 원논문)
Cassidy CM, Zucca FA, Girgis RR, et al. Neuromelanin-sensitive MRI as a noninvasive proxy measure of dopamine function. Hum Brain Mapp. 2019;40(8):2510-2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