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구의 건강 칼럼 (37)
도파민이 통과하지 못한 혈뇌장벽, 레보도파는 어떻게 넘었을까?
파킨슨병 치료제 레보도파는 어떻게 탄생했을까?지난 글에서 우리는 1960년대 초반 의학이 마주했던 난감한 상황 하나를 다뤘습니다.
파킨슨병이 도파민 부족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은 이미 확인된 상태였는데요.
문제는 그 도파민을 뇌 속으로 어떻게 전달하느냐였습니다.
혈뇌장벽이라는 관문이 도파민 분자의 통과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이 꽉 막힌 문제를 단순하면서도 놀라운 아이디어 하나로 풀어낸 인물이 있습니다.
스웨덴의 신경약리학자 아르비드 칼손(Arvid Carlsson, 1923~2018)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가 이 아이디어에 도달한 과정과, 그 발상이 6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환자들의 삶을 지켜주는 치료제로 이어진 흐름을 짚어보겠습니다.
칼손 — 도파민의 진짜 가치를 알아본 인물칼손은 스웨덴 남부 룬드(Lund) 지역, 의사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룬드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한 뒤, 같은 대학 약리학과에 남아 연구자의 길을 걷게 됩니다.
1950년대 중반까지 의학계에서 도파민은 다른 신경전달물질을 합성하는 과정 중 잠깐 거치는 중간 물질 정도로 여겨졌습니다.
앞서 다룬 글에서도 언급했던 부분이죠.
그러나 칼손은 룬드에 있던 작은 실험실에서,
도파민이 실은 뇌 안에서 독자적으로 신호를 전달하는 물질이며 운동 조절에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여러 실험으로 하나씩 증명해 나갑니다.
1957년부터 1959년까지 이어진 이 연구는, 도파민이라는 물질을 처음으로 의학의 중심에 세운 사건이었습니다.
이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그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자연스럽게 떠올립니다.
도파민 부족이 운동 장애의 원인이라면, 그 결핍을 채워줄 방법도 있지 않을까 하는 물음이었죠.
1957년 토끼 실험 — 도파민이 없어지면 벌어지는 일칼손이 처음 착수한 작업은 도파민 결핍 상태를 실험실 안에서 재현하는 일이었습니다.
가설을 검증하려면 그 결과를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쓰인 물질이 레세르핀(reserpine)이었습니다.
레세르핀은 신경세포의 시냅스 소포 안에 있던 도파민 등의 신경전달물질을 밖으로 새어 나가게 만들어, 결국 신호 전달에 쓰이지 못하게 하는 약물입니다.
당시에는 고혈압 치료 목적으로도 처방되던 약이었습니다.
칼손은 이 레세르핀을 실험용 토끼들에게 투여했습니다.
결과는 매우 극적이었습니다.
활발하게 움직이던 토끼들이 불과 몇 시간 만에 거의 움직임을 멈춰버린 것입니다.
몸이 굳은 채 한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고, 자극을 줘도 반응이 거의 없었습니다.
흡사 파킨슨병 환자를 보는 듯한 모습이었죠.
이 관찰을 통해 한 가지 사실이 확실해졌습니다.
도파민이 없어지면 몸의 움직임도 함께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도파민과 운동 능력의 연결고리가 이제는 가설이 아니라, 실험실에서 눈으로 확인 가능한 인과관계로 입증된 셈입니다.
완성품이 안 통과되면, 부품을 보내면 된다이 지점에서 칼손은 다시 한번 앞서 던졌던 질문과 마주합니다.
도파민이 사라지면 토끼는 움직이지 못한다.
그렇다면 도파민을 다시 넣어주면 되지 않을까.
그런데 도파민이라는 물질 자체는 혈뇌장벽을 넘지 못합니다.
이 막힌 길 앞에서, 칼손은 단순하지만 결정적인 발상 전환을 이뤄냅니다.
도파민 완제품은 뇌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그럼 뇌 안에서 도파민으로 변할 수 있는 다른 물질을 보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도파민이 체내에서 합성되는 경로를 되짚어봤습니다.
그 경로 안에는 도파민 바로 앞 단계에 해당하는 물질이 있었습니다.
바로 레보도파(L-DOPA)라는 작은 분자입니다.
레보도파는 도파민과 구조가 매우 비슷하지만, 한 가지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습니다.
의학적으로 아미노산에 속한다는 점이었죠.
아미노산은 몸이 단백질을 합성할 때 쓰는 기본 재료이고, 뇌 역시 정상 기능을 유지하려면 아미노산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뇌의 관문에는 아미노산을 안전한 영양소로 판단해 통과시켜주는 전용 통로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칼손은 이 점에 주목했습니다.
레보도파가 화학적으로 아미노산과 닮아 있다면, 이 전용 통로를 통해 뇌 안으로 진입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입니다.
일단 뇌 속에 들어가면, 뇌 자체의 효소를 이용해 레보도파를 도파민으로 바꿀 수 있으리라 본 것이죠.
몇 분 만에 되살아난 토끼들이 가설 역시 토끼를 통해 검증되었습니다.
레세르핀 투여로 거의 움직이지 못하던 토끼들에게, 이번에는 레보도파를 주입한 것입니다.
결과는 그의 예상을 뛰어넘었습니다.
투여 후 불과 몇 분 만에, 누워만 있던 토끼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자극에 반응하고, 일어서서 걸어다니며, 예전의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관문을 통과하지 못해 막혀 있던 도파민이, 부품 형태로는 무사히 통과해 뇌 안에서 다시 완성품으로 조립된 셈입니다.가구와 부품 — 한 가지 비유이 발견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비유가 하나 있습니다.
문이 좁은 방에 가구를 옮겨 놓아야 한다고 생각해봅시다.
이미 완성된 가구는 그 좁은 문을 통과하지 못합니다.
힘을 아무리 줘도 크기가 맞지 않아 걸리고 맙니다.
하지만 가구를 부품 단위로 미리 분해해서 옮긴다면 어떨까요.
부품 하나하나는 좁은 문을 손쉽게 통과하고, 방에 들어간 뒤 다시 조립하면 결국 같은 가구가 완성됩니다.
칼손이 해낸 일이 정확히 이와 같습니다.
완성품인 도파민은 뇌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지만, 그 재료가 되는 레보도파는 통과할 수 있고, 통과한 뒤 뇌 안에서 다시 도파민으로 조립됩니다.
이 하나의 발상 전환이 이후 60년간 파킨슨병 환자들의 삶을 지탱해온 약물 치료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2000년 노벨상 — 뒤늦게 인정받은 도파민의 무게칼손의 발견은 처음엔 짧은 학술 보고 하나로 시작됐습니다.
1957년 학술지 Nature에 실린 짧은 논문 한 편이 그 시작이었죠.
하지만 이후 수십 년에 걸쳐, 도파민이 운동 조절뿐 아니라 보상, 동기, 기분 조절 등 매우 다양한 기능에 관여한다는 사실이 차례로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발견의 출발점에 칼손의 1957년 실험이 있었다는 사실도 함께 확인되었습니다.
2000년, 칼손은 도파민이 뇌의 신호 전달 과정에서 맡는 핵심 역할을 최초로 규명한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합니다.
첫 토끼 실험 이후 43년 만의 일이었습니다.마치며 — 토끼의 회복에서 사람의 치료까지, 다시 10년다시 1957년의 토끼 실험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해 칼손은 레보도파를 투여받은 토끼가 몇 분 만에 다시 움직이는, 매우 명확한 효과를 입증해냈습니다.
학계에 충분히 보고되었고, 같은 결과는 다른 실험실에서도 곧 반복 확인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1957년의 토끼 실험 결과가 실제 사람 환자의 치료제로 자리 잡기까지는, 그 후로도 약 10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습니다.
(참고로 이 10년의 공백은, 칼손이 훗날 2000년에 노벨상을 받는 일과는 별개의 이야기입니다.)
그 사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1960년대 초 여러 임상 시도에서, 환자들이 레보도파를 투여받으면 심한 구토 등의 부작용에 시달렸습니다.
그 결과 "효과는 있어 보이지만 사람이 감당하기는 어려운 약"이라는 평가가 자리 잡았습니다.
레보도파는 그렇게 다시 폐기될 위기에 놓였습니다.
이 위기를 넘어, 1967년 마침내 휠체어에 의지하던 환자들이 스스로 일어나 걷는 변화를 만들어낸 또 한 인물의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가겠습니다.
참고자료1차 사료
Carlsson A, Lindqvist M, Magnusson T. 3,4-Dihydroxyphenylalanine and 5-hydroxytryptophan as reserpine antagonists. Nature. 1957;180(4596):1200.
Carlsson A. The occurrence, distribution and physiological role of catecholamines in the nervous system. Pharmacol Rev. 1959;11:490-493.
의사학 종합 문헌
Hornykiewicz O. A brief history of levodopa. J Neurol. 2010;257(Suppl 2):S249-S252.
Carlsson A. Nobel Lecture: A half-century of neurotransmitter research — impact on neurology and psychiatry. December 8, 2000.
Fahn S. The history of dopamine and levodopa in the treatment of Parkinson's disease. Mov Disord. 2008;23(Suppl 3):S497-S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