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구의 건강 칼럼 (38)
구토와 메스꺼움 때문에 버려질 뻔한 약, 레보도파 부작용의 진실
레보도파 부작용, 처음엔 왜 심했을까?지난 글에서는 1957년 아르비드 칼손이 토끼 실험을 통해 뚜렷한 사실 하나를 밝혀냈다는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도파민의 전 단계 물질인 레보도파를 투여하면, 뇌의 방어벽을 넘어선 뒤 도파민으로 전환되어 운동 기능이 회복된다는 발견이었죠.
이 발견은 학계에 빠르게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환자들의 삶이 실제로 나아지기까지는, 이후로도 약 10년이라는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그 기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고, 누가 이 벽을 넘어섰을까요?
이번 글에서는 그 10년 동안의 이야기와,
휠체어에 의지하던 환자들을 마침내 두 발로 서게 만든 한 인물의 이야기를 소개하려 합니다.
토끼는 성공, 사람은 실패 — 1960년대 초의 시련칼손의 1957년 발표 이후, 1960년대 초 전 세계 여러 연구소에서 같은 방식을 사람에게 적용해보려는 시도가 이어졌습니다.
오스트리아 빈, 캐나다 몬트리올, 미국의 여러 도시에서 파킨슨병 환자를 대상으로 레보도파를 투여하는 임상시험이 잇달아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토끼 실험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약을 투여받은 환자들은 극심한 메스꺼움과 구토 증상을 겪었습니다.
어떤 환자는 약을 입에 대는 것조차 힘겨워할 정도로 구역질을 심하게 했고, 어떤 환자는 약을 삼키자마자 모두 토해냈습니다.
그럼에도 운동 증상이 눈에 띄게 좋아지는 환자는 거의 없었습니다.
학계의 분위기는 점점 하나의 결론으로 기울어갔습니다.
"효과가 있을 수는 있지만,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약은 아니다."
레보도파는 흥미로운 실험 결과로만 남고, 실제 치료제로서는 폐기 수순을 밟는 듯 보였습니다.
바로 이 시점에서, 한 인물이 전혀 다른 관점으로 문제를 들여다보기 시작합니다.조지 코지아스 — 다른 배경에서 온 신경학자그 인물이 바로 조지 코지아스(George Cotzias, 1918~1977)입니다.
코지아스는 그리스에서 태어났고, 의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의학을 공부하게 됐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하버드 대학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그가 몸담은 곳은 뉴욕주 롱아일랜드에 위치한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Brookhaven National Laboratory)였습니다.
이 연구소는 원래 핵물리학과 핵의학 연구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대규모 국책 기관이었지만, 내부에는 의학 연구 부서도 있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코지아스가 처음 집중했던 분야는 파킨슨병이 아니라 망간 중독(manganism)이라는 직업병이었습니다.
광산이나 제련소에서 장기간 망간에 노출된 노동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동작이 느려지고 몸이 뻣뻣해지며 손 떨림이 나타나는,
파킨슨병과 유사한 증상을 보이곤 했습니다.
이 환자들을 치료하던 코지아스는 이들이 뇌의 도파민 체계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 경험은 그가 자연스럽게 파킨슨병 연구로 관심을 넓히는 계기가 됐습니다.
발상의 전환 — 문제는 약이 아니라 '투여 방식'이었다1960년대 중반의 임상 실패 사례들을 되짚어보던 코지아스는 이후 모든 것을 바꿔놓을 통찰에 도달합니다.
당시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이 약 자체에 효과가 없거나, 인체에 화학적으로 해로운 물질이라고 결론짓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코지아스는 다른 가능성을 떠올렸습니다.
혹시 문제는 약이 아니라, 약을 주는 방식에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의심한 것입니다.
당시의 임상시험들은 대부분 빠른 효과를 얻기 위해 처음부터 많은 양의 레보도파를 한 번에 투여했습니다.
그러나 코지아스는 바로 이 첫 고용량이야말로 환자의 몸이 미처 적응하지 못해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는 원인일 수 있다고 봤습니다.
아주 적은 양에서 시작해 몸이 서서히 익숙해질 시간을 준다면, 부작용 없이 효과만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그는 가정했습니다.1967년 — 적정 요법이라는 새로운 시도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코지아스는 1967년 결정적인 임상시험을 진행합니다.
그는 파킨슨병 환자 28명을 모집했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오랜 병의 진행으로 휠체어에 의존하거나, 혼자서는 거의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가 택한 투여 방식은 겉보기엔 단순했지만, 결과를 완전히 뒤바꾼 결정적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아주 적은 용량에서 출발해 몇 주에 걸쳐 서서히 양을 늘려가는 방식이었습니다.
환자의 몸이 약에 충분히 적응할 시간을 주면서,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최적의 용량까지 조금씩 끌어올리는 방법이었습니다.
의학에서는 이런 방식을 '적정(titration)'이라고 부릅니다.
그 결과는 1960년대 신경학계를 뒤흔든 사건이 됩니다.
브룩헤이븐의 기적코지아스가 그해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발표한 임상 결과에는 다음과 같은 변화가 담겨 있었습니다.
몇 년 동안 휠체어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환자들이 스스로 일어나 걷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환자는 가족 앞에서 생애 처음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또 다른 환자는 혼자 외출했다가 스스로 걸어서 돌아왔습니다.
굳어 있던 얼굴에도 다시 표정이 돌아왔습니다.
몇 년째 거의 표정 변화가 없던 환자가 웃고, 놀라고, 가족과 눈을 맞추며 감정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수년 만에 자기 이름을 또렷하게 말한 환자들도 있었습니다.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고 단조로운 목소리로만 말하던 환자가, 이제는 평범한 목소리로 가족과 대화할 수 있게 됐습니다.
브룩헤이븐의 작은 연구실에서 한 사람씩 일어서기 시작한 이 변화는, 이후 의학사에서 '브룩헤이븐의 기적(Brookhaven miracle)'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됩니다.
당시 환자들의 회복 장면은 본인과 가족, 의료진 모두에게 각별한 무게로 다가왔습니다.
몇 년에 걸쳐 조금씩 잃어갔던 일상이, 한 알의 약과 인내심 있는 용량 조절만으로 부분적으로나마 되돌아왔기 때문입니다.1970년 FDA 승인 — 그리고 50년이 지난 지금코지아스의 1967년 보고 이후, 다른 연구팀들도 같은 적정 방식의 임상시험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비슷한 효과가 반복해서 확인됐습니다.
그 결과 1970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레보도파를 파킨슨병 치료제로 정식 승인했습니다.
칼손의 토끼 실험으로부터는 13년, 코지아스의 첫 임상 보고로부터는 3년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다시 5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레보도파는 여전히 파킨슨병 약물 치료의 핵심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새로운 약물이 끊임없이 개발되는 오늘날에도, 레보도파만큼 운동 증상을 뚜렷하게 개선하는 단일 약물은 아직 없습니다.
매년 전 세계에서 수십만 명씩 새로 진단받는 환자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약이 여전히 이 약이라는 사실이, 그 무게를 보여줍니다.
마치며칼손이 1957년에 발견한 사실과, 코지아스가 1967년에 완성한 적정 요법.
이 두 사람을 거쳐서야 비로소 환자의 삶을 바꾸는 약으로 완성된 레보도파의 이야기를 함께 따라가 봤습니다.
브룩헤이븐에서 일어난 환자들의 변화는 당시 의료진과 가족들에게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이 변화는 그로부터 20년쯤 지난 어느 시점, 한 편의 영화를 통해 대중에게까지 깊이 전해집니다.
다음 글에서는 바로 그 영화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참고자료1차 사료
Cotzias GC, Van Woert MH, Schiffer LM. Aromatic amino acids and modification of parkinsonism. N Engl J Med. 1967;276(7):374-379.
Cotzias GC, Papavasiliou PS, Gellene R. Modification of parkinsonism — chronic treatment with L-Dopa. N Engl J Med. 1969;280(7):337-345.
의사학 종합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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