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구의 건강 칼럼 (42)
파킨슨병 약 복용 시간을 식사 시간과 나누는 이유를 혈뇌장벽에서 살펴봅니다.
파킨슨병 레보도파, 식사 후 약효가 달라지는 이유앞선 글에서는 레보도파를 복용한 뒤 실제로 뇌까지 도달하는 양이 생각보다 매우 적다는 점을 살펴봤습니다.
복용된 레보도파의 대부분은 뇌에 도착하기 전에 여러 효소의 작용을 받아 다른 물질로 바뀝니다.
그 결과 혈액을 따라 뇌 근처까지 도달하는 양은 전체의 5%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살아남았다고 해서 곧바로 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레보도파 앞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관문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혈뇌장벽입니다.
혈뇌장벽은 혈액 속 물질을 무조건 뇌로 통과시키지 않습니다.
뇌에 필요한 성분과 그렇지 않은 물질을 엄격하게 구분해 출입을 제한하는 구조인데요.
도파민조차 혈액 속에서는 이 장벽을 자유롭게 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레보도파는 어떻게 이 벽을 통과할 수 있을까요.
그 답을 이해하려면 LAT1이라는 운반체를 먼저 살펴봐야 합니다.
칼손이 발견한 것은 약 자체가 아니라 ‘통과 방식’이었습니다1957년 칼손의 연구에서 중요한 지점은 단순히 레보도파가 효과를 보였다는 사실만은 아니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도파민과 레보도파가 혈뇌장벽에서 전혀 다르게 취급된다는 점이었습니다.
도파민은 그 자체로 혈뇌장벽을 지나가기 어렵습니다.
반면 레보도파는 아미노산과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뇌는 생존과 기능 유지를 위해 여러 아미노산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아야 합니다.
따라서 혈뇌장벽에는 아미노산을 뇌 안으로 옮겨주는 별도의 운반 체계가 존재합니다.
칼손이 주목한 것도 바로 이 부분이었습니다.
레보도파가 아미노산과 닮아 있다면, 뇌가 원래 가지고 있던 아미노산 운반 통로를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죠.
이러한 아이디어는 동물실험을 통해 가능성이 확인됐고, 이후 후속 연구를 통해 그 실제 운반체의 정체가 점차 구체적으로 밝혀졌습니다.
그 운반체가 LAT1입니다뇌혈관을 이루는 세포의 표면에는 여러 종류의 운반 단백질이 존재합니다.
그중 레보도파와 밀접하게 관련되는 것이 LAT1 (Large Neutral Amino Acid Transporter 1)입니다.
이름 그대로 큰 중성 아미노산을 운반하는 단백질입니다.
LAT1은 평소 우리 몸에서 만들어진 여러 아미노산을 혈액에서 뇌 쪽으로 옮기는 역할을 합니다.
이 가운데 주요 대상이 LNAA (Large Neutral Amino Acids)입니다.
류신, 이소류신, 발린, 페닐알라닌, 티로신, 트립토판, 메티오닌, 히스티딘 등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이 아미노산들은 단순한 영양소가 아닙니다.
뇌에서 단백질을 만들고 신경전달물질 합성에 관여하며, 신경세포가 정상적인 기능을 유지하는 데에도 필요합니다.
혈뇌장벽이 강력한 차단막이라고 해도 뇌에 필요한 모든 물질까지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꼭 필요한 아미노산은 LAT1과 같은 선택적 운반체를 통해 받아들이게 됩니다.
쉽게 말하면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공간에 허가된 물질만 사용할 수 있는 별도 통로가 마련되어 있는 셈입니다.레보도파는 왜 LAT1을 이용할 수 있을까요핵심은 레보도파의 구조에 있습니다.
레보도파는 페닐알라닌이나 티로신과 같은 LNAA 계열 아미노산과 분자 구조가 상당히 닮아 있습니다.
LAT1은 어떤 분자를 옮길지 판단할 때 크기와 형태, 전하 같은 여러 특성을 인식합니다.
레보도파는 이러한 기준에서 LAT1이 원래 운반하던 아미노산들과 충분히 비슷합니다.
그래서 LAT1은 레보도파를 자신이 운반할 수 있는 물질로 인식합니다.
이 덕분에 레보도파는 도파민으로 바뀌기 전 단계에서 혈뇌장벽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즉, 도파민이 직접 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레보도파가 먼저 아미노산 운반 통로를 이용해 뇌 안으로 들어간 뒤, 그 안에서 도파민으로 전환되는 방식입니다.
칼손이 생각했던 우회 경로가 실제 분자 수준에서는 LAT1이라는 운반체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LAT1의 운반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점입니다LAT1이 레보도파를 운반할 수 있다고 해서 항상 충분한 양이 뇌로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이 운반체가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양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LAT1을 이용하려는 물질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경쟁이 생깁니다.
레보도파와 다른 아미노산이 같은 통로를 사용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가 특히 두드러지는 때가 단백질이 많은 식사를 한 직후입니다.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을 먹으면 소화 과정에서 여러 아미노산이 만들어집니다.
그중에는 류신, 이소류신, 발린, 페닐알라닌처럼 LNAA에 해당하는 아미노산도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식사 뒤 혈액 속 LNAA 농도가 높아지면 이 아미노산들은 LAT1을 통해 뇌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이때 레보도파도 같은 운반체를 이용해야 하므로 자연스럽게 경쟁이 발생합니다.
결국 레보도파가 혈뇌장벽까지 도달했더라도 LAT1을 충분히 이용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실제로 뇌 안으로 들어가는 레보도파의 양도 줄어들 수 있습니다.
이 상황은 제한된 수의 좌석을 여러 사람이 동시에 이용하려는 경우와 비슷합니다.
좌석 자체는 늘어나지 않았는데 이용하려는 사람이 많아지면 누군가는 기다리거나 이용하지 못하게 됩니다.
LAT1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집니다.단백질과의 경쟁은 한 번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레보도파와 아미노산의 경쟁은 혈뇌장벽에서 처음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앞선 글에서 살펴봤듯이 소장에서 흡수되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경쟁이 일어납니다.
장관에서도 레보도파는 아미노산과 관련된 운반 체계를 이용합니다.
따라서 식사 뒤 아미노산이 많이 존재하면 레보도파가 장에서 흡수되는 과정부터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경쟁입니다.
장관을 통과한 레보도파가 혈액을 타고 뇌에 도착하면 두 번째 경쟁이 다시 시작됩니다.
이번에는 혈뇌장벽의 LAT1을 놓고 LNAA와 경쟁합니다.
정리하면 단백질이 많은 식사는 레보도파의 이동 과정에서 두 번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한 번은 장에서 혈액으로 흡수될 때입니다.
또 한 번은 혈액에서 뇌 안으로 들어갈 때입니다.
이 두 단계의 경쟁이 겹치면 같은 용량의 레보도파를 복용하더라도 약효가 나타나는 정도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특히 단백질이 많은 식사를 한 뒤 약효가 늦어지거나 이전보다 약하게 느껴지는 현상을 설명할 때 중요한 기전입니다.
파킨슨병 환자분들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약효 변동 가운데 일부는 이러한 흡수와 운반 과정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식사와 복용 시간을 나누어 생각합니다레보도파와 식사 시간을 어느 정도 분리하도록 안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레보도파는 식사 약 30분 전이나 식사 후 약 1시간 정도 간격을 두고 복용하도록 안내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권고는 단순히 위장관 흡수만을 고려한 것이 아닙니다.
식사 뒤 증가한 LNAA와 레보도파가 동시에 LAT1을 이용하려는 상황을 줄이는 의미도 있습니다.
즉, 소장에서의 경쟁과 혈뇌장벽에서의 경쟁을 모두 고려한 복용 원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모든 환자에게 같은 방식이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레보도파 복용 횟수와 용량, 체중, 하루 단백질 섭취량, 영양 상태, 약효 변동의 정도 등을 함께 살펴야 합니다.
일부 환자는 약을 공복에 복용했을 때 메스꺼움이나 속 불편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약효와 위장 증상을 함께 고려해 복용 방법을 조정해야 합니다.
또한 단백질을 무조건 줄이는 것이 바람직한 것도 아닙니다.
파킨슨병 환자에게도 충분한 단백질과 전체적인 영양 섭취는 중요합니다.
따라서 핵심은 단백질 자체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약 복용과 식사 시점을 어떻게 배치할지 개인별로 조정하는 데 있습니다.
비타민과 미네랄, 전체 열량, 단백질 배분 방식까지 포함한 식이 관리는 별도의 주제로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이 부분은 약물동력학에 대한 설명을 마친 뒤 다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뇌에 들어온 레보도파도 아직 마지막 단계가 남아 있습니다지금까지의 이동 경로를 다시 따라가 보겠습니다.
레보도파는 먼저 위장관에서 흡수되어야 합니다.
이후 혈액으로 들어간 뒤에는 여러 효소에 의해 상당 부분이 분해됩니다.
그 과정을 통과하고 남은 소량의 레보도파는 다시 혈뇌장벽이라는 관문을 만납니다.
여기서는 LAT1을 이용해 다른 아미노산과 경쟁하면서 뇌 안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이렇게 여러 단계를 지나야 비로소 레보도파가 뇌 조직에 도달합니다.
그렇지만 뇌에 도착한 것만으로 약물의 역할이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시점의 레보도파는 아직 도파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레보도파 자체가 운동 회로에서 바로 신경전달물질로 작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뇌 안에서 다시 도파민으로 변환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 변환은 어떤 효소가 담당할까요.
또 뇌의 어느 부위와 어떤 세포에서 이 과정이 이루어질까요.
이 질문은 단순한 생화학적 호기심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파킨슨병이 진행될수록 약효 지속 시간이 짧아지고 복용 시간에 따라 반응이 크게 달라지는 이유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다음 글에서는 뇌에 들어온 레보도파가 실제 도파민으로 바뀌는 과정을 이어서 살펴보겠습니다.참고자료1차 사료 / 핵심 연구
Wade LA, Katzman R. Synthetic amino acids and the nature of L-DOPA transport at the blood-brain barrier. J Neurochem. 1975;25(6):837-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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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2차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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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snier-Pucheu B, Yu PB, Hoque MT, et al. Large neutral amino acid transporter 1 (LAT1) and the blood-brain barrier: implications for levodopa therapy. Acta Physiol. 2024;240(1).
Nutt JG, Woodward WR, Hammerstad JP, Carter JH, Anderson JL. The "on-off" phenomenon in Parkinson's disease. Relation to levodopa absorption and transport. N Engl J Med. 1984;310(8):483-4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