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구의 건강칼럼 (10)
올리고머 vs 루이소체, 진짜 위험한 건 어느 쪽일까?
올리고머와 루이소체, 어느 쪽이 더 위험할까 — 단백질 응집이 진행되는 4단계지난 글에서는 정상적인 알파-시뉴클린이 왜 모양을 잘못 갖추게 되는지(미스폴딩),
그리고 이렇게 잘못 접힌 단백질이 베타-병풍 구조 탓에 서로 쉽게 들러붙는다는 점을 다뤘습니다.
그렇다면 이 '들러붙는 과정'은 실제로 어떤 순서로 일어날까요?
잘못 접힌 단백질 하나가 둘이 되고, 다시 다섯이 되고, 결국 1912년 루이가 현미경으로 관찰했던 그 커다랗고 둥근 덩어리(루이소체)로 이어지기까지,
그 중간 단계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오늘은 이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응집이 진행되는 네 단계 — 작은 덩어리에서 커다란 인클루전으로맨 처음에는 단백질 하나가 잘못 접힙니다.
이것이 다른 미스폴딩된 단백질과 마주치면 둘이 서로 붙습니다.
이후 세 번째, 네 번째가 계속 이어 붙으면서 무리가 점점 커집니다.
이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다음과 같은 네 가지 형태를 순서대로 지나가게 됩니다.
1단계: 올리고머(oligomer) — 가장 작은 형태의 덩어리
올리고머란 미스폴딩된 알파-시뉴클린이 두 개에서 많아야 수십 개 정도 뭉친, 상당히 작은 크기의 덩어리를 가리킵니다.
크기가 워낙 작아 일반 현미경으로 관찰하기 쉽지 않으며, 모양 또한 일정하지 않습니다.
둥근 구슬 모양이 되기도 하고, 짧은 막대 모양이나 고리 모양을 띠기도 합니다.
응집 과정 중 맨 처음 나타나는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2단계: 원섬유(protofibril) — 가늘고 짧은 실 모양
올리고머에 단백질이 계속 덧붙으며 길이가 늘어나면, 짧고 가느다란 실 모양의 구조로 바뀌는데, 이를 원섬유라고 합니다.
올리고머 단계보다는 안정성이 높아졌지만, 아직 길이는 짧은 편입니다.

3단계: 섬유(fibril) — 길고 안정된 실 모양
원섬유가 더욱 성장하면 길고 견고한 실 형태를 갖추게 되며, 이를 섬유라 부릅니다.
앞서 살펴본 베타-병풍 구조가 여러 겹으로 쌓여 만들어진 매우 견고한 구조로, 한번 형성되고 나면 좀처럼 다시 분해되지 않는 특징이 있습니다.
4단계: 루이소체(Lewy body) — 커다란 인클루전
여러 갈래의 섬유가 다른 세포 내 부산물들과 뒤섞여 한자리에 뭉치면, 신경세포 안에 크고 둥근 덩어리가 형성됩니다.
이것이 바로 1912년 프리드리히 루이가 현미경 관찰을 통해 처음 발견한 구조물, 즉 루이소체입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현미경으로도 뚜렷이 확인할 수 있을 만큼 크기가 커집니다.
이렇게 네 단계는 하나의 신경세포 안에서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수십 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됩니다.
예상과는 다른 이야기 — 큰 덩어리보다 작은 덩어리가 더 해로울 수 있다?상식적으로 보면 크기가 가장 큰 루이소체가 가장 해로울 것처럼 느껴집니다.
육안으로도 확인될 만큼 크고, 신경세포의 핵을 한쪽으로 밀어낼 정도이며, 현미경 소견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 축적된 연구 결과들은 이와는 반대되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크기가 작은 올리고머 쪽이 커다란 루이소체보다 더 큰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가설입니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올리고머는 크기가 작고 형태도 다양한 만큼, 세포 내부 이곳저곳을 비교적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표면이 거칠고 화학적으로도 반응성이 높아, 주변 단백질과 부딪히거나 세포막에 접촉했을 때 손상을 일으키기 쉬운 성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올리고머는 크기는 작아도 활발하게 돌아다니며 문제를 일으키는 존재에 가깝습니다.
반대로 크기가 큰 섬유나 루이소체는 한자리에 안정적으로 머무르고,
표면 구조도 비교적 폐쇄적이어서 주변 조직에 직접적인 손상을 가하기는 어려운 편입니다.
2011년 미국 학술지 PNAS에 실린 한 연구에서는,
알파-시뉴클린 올리고머만을 인위적으로 제작해 동물 모델에 투여했을 때 실제로 신경세포 손상이 관찰되었다고 보고했습니다.
즉 커다란 덩어리 형태를 거치지 않더라도, 작은 올리고머 자체만으로 신경세포에 손상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실험적으로 뒷받침된 셈입니다.
그렇다면 루이소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 '방어 반응'이라는 가설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또 하나의 흥미로운 가설을 만나게 됩니다.
루이소체가 질병을 직접 일으키는 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세포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어 반응의 결과물일 수 있다는 관점입니다.
세포가 위험한 올리고머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작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위험 요소들을 크고 안정적인 덩어리 안에 가두어 한곳에 모아두는 것
— 일종의 대피 공간이나 임시 보관소 역할을 루이소체가 맡고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입니다.
이 가설이 실제로 맞는지에 대해서는 학계 안에서도 의견이 나뉘고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활발히 연구가 이어지고 있는 분야입니다.
다만 한 가지 사실만큼은 점차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1912년 루이가 발견했던 그 구조물이 단순한 '해로운 덩어리'라기보다는,
신경세포 내부에서 벌어지는 더 복잡한 일련의 과정이 남긴 결과물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이러한 관점이 치료 연구에 주는 시사점응집 과정 중 어느 단계가 가장 해로운지에 대한 이해가 바뀌면서, 치료 연구의 방향성에도 자연스럽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만약 루이소체가 질병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면, 이 큰 덩어리를 없애는 데 초점을 맞춘 치료법은 실제 효과가 제한적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대로, 그보다 앞선 단계인 작은 올리고머 단계를 표적으로 삼는 치료법이 더 큰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시사점을 얻게 됩니다.
실제로 현재 개발 중인 알파-시뉴클린 표적 치료법 상당수는, 작은 올리고머 자체 혹은 그것이 형성되는 과정을 차단하는 방향으로 설계되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까지 임상에서 효과가 명확히 입증된 단계는 아니며, 여전히 활발한 연구가 진행 중이라는 점은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치며지금까지 단백질 응집이 진행되는 네 단계와, 그중 어느 단계가 가장 위험할 수 있는지에 관한 여러 관점을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중요한 질문 하나가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올리고머와 섬유, 그리고 루이소체는 신경세포 안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손상을 일으키는 것일까요?
신경세포는 어떤 경로를 거쳐 서서히 힘을 잃어가는 것일까요? 이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가겠습니다.참고자료학술 2차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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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ner B, Jappelli R, Maji SK, et al. In vivo demonstration that alpha-synuclein oligomers are toxic. Proc Natl Acad Sci USA. 2011;108(10):4194-4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