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ram Health Column

메디람 건강칼럼

장뇌축과 파킨슨병, 뇌질환의 시작이 장이다?
2026. 07. 21

닥터 구의 건강칼럼 (14)
장뇌축(gut-brain axis)과 파킨슨병의 관계, 이중 타격 가설로 풀다

파킨슨병, 시작점은 정말 뇌일까 — 2003년의 반전


여기까지 우리는 알파-시뉴클린(alpha-synuclein)이라는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접혀 뭉치고, 신경세포를 손상시키고, 이웃한 세포로 옮겨가면서,
특히 흑색질의 도파민 신경세포에 큰 타격을 준다는 과정을 살펴봤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풀리지 않은 질문이 하나 남습니다.
이 모든 분자·세포 수준의 변화는 애초에 환자의 몸 어느 부위에서 처음 생겨나는 걸까요?


의학계는 오랜 시간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갖고 있다고 믿어왔습니다.
하지만 2003년 발표된 한 연구가 그 믿음의 뿌리를 흔들어 놓았습니다.
오늘 다룰 내용이 바로 이 연구, 그리고 여기서 출발한 '이중 타격 가설(Dual-hit hypothesis)'입니다.





한 세기 동안 굳어진 통념 — "파킨슨병은 뇌질환이다"

1817년 제임스 파킨슨이 환자의 겉으로 드러난 증상을 처음 기록한 뒤로 거의 100년,
그리고 1912년 프리드리히 루이가 뇌 조직에서 루이소체를 발견한 뒤로도 다시 거의 100년 가까이, 파킨슨병은 기본적으로 '뇌'의 병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런 시각이 자리 잡은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손 떨림이나 걸음걸이의 굳어짐 같은 운동 증상들은 모두 흑색질 도파민 신경세포가 망가지면서 나타납니다.
즉 증상이 실제로 벌어지는 무대는 명백히 뇌입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손상이 시작되는 지점도 뇌일 거라 짐작해온 것입니다.


20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파킨슨병 연구 대부분은 이 전제 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 뇌의 흑색질이 어떤 식으로 손상되는가.
그 손상이 흑색질에 닿기 전, 더 앞선 단계에서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묻는 연구는 드물었습니다.



2003년, 통념을 뒤집은 한 연구자

이 오래된 전제에 균열을 낸 인물은 독일의 신경병리학자 하이코 브라크(Heiko Braak)입니다.
2003년 그가 동료 연구진과 함께 내놓은 논문이 파킨슨병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를 바꿔놓았습니다.


브라크 연구팀이 한 작업 자체는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파킨슨병으로 세상을 떠난 수백 명의 환자로부터 보존된 뇌 조직을 확보한 뒤,
루이소체가 뇌의 어느 부위에 어떻게 퍼져 있는지를 환자 한 명 한 명 꼼꼼히 기록해 지도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다만 그 결과물이 보여준 그림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루이소체는 뇌 안에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마치 정해진 행군로를 따라 걸어간 발자국처럼, 환자마다 거의 동일한 순서로 나타났습니다.
게다가 더 눈길을 끄는 점은 — 변성된 알파-시뉴클린이 가장 먼저 발견되는 곳이 뇌의 깊숙한 중심부가 아니라, 오히려 뇌의 '가장자리'였다는 사실입니다.


브라크 연구팀은 이 병리 현상이 뇌간 가장 아래쪽과 후각 관련 영역, 즉 가장 바깥쪽 신경 구조에서 시작해 서서히 위쪽으로 번지며,
운동 조절의 핵심인 흑색질을 거쳐, 마침내 대뇌피질까지 이르는 총 6단계의 진행 패턴을 보인다는 사실을 정리했습니다.
이 체계는 오늘날 '브라크 병기(Braak staging)'로 불립니다.





시작점을 찾아서 — 장과 코

브라크 연구팀이 포착한 가장 핵심적인 단서는, 루이소체가 가장 처음 관찰되는 위치가 어디인가였습니다.
그 답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뇌가 아니라, 뇌와 이어져 있는 두 곳의 말초 부위였습니다.


- 장(腸)의 벽을 감싸고 있는 신경 그물망 (소화관 안쪽에 촘촘히 자리한 신경세포 집합)
- 코 안쪽 깊은 곳의 후각 신경 (냄새를 인식하는 신경세포)


이 두 부위에는 뚜렷한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둘 다 우리 몸이 외부 환경과 직접 맞닿는 접점이라는 점입니다.
장은 매일 섭취하는 음식을 통해, 코는 매 순간 들이마시는 공기를 통해 바깥세상과 끊임없이 접촉합니다.


이런 관찰들을 토대로 2007년, 새로운 가설 하나가 정식으로 세상에 나옵니다.
바로 '이중 타격 가설(Dual-hit hypothesis)'입니다.





이중 타격 가설 — 두 개의 관문에서 시작되는 침입

이 가설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알파-시뉴클린의 변성은 환자의 뇌가 아니라, 몸이 바깥 세계와 맞닿는 두 개의 관문에서 처음 시작됩니다.
하나는 코의 후각 신경, 다른 하나는 장의 신경계입니다.
일단 변성이 일어나면, 변성된 알파-시뉴클린은 이 두 지점에서 출발해 두 갈래의 물줄기처럼 신경 경로를 따라 천천히 뇌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뇌 깊은 곳의 흑색질에 도달하는 시점에 이르러서야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파킨슨병의 운동 증상이 환자에게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손떨림, 동작이 느려지는 것, 자세가 굳는 것, 점점 빨라지는 걸음 같은 변화들입니다.


이 가설이 던지는 메시지는 하나입니다.
파킨슨병이 지난 100년간 믿어온 것처럼 순수한 뇌질환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어쩌면 이 병은 뇌 바깥, 몸이 외부와 접촉하는 변두리 지점에서 조용히 시작되어 환자 자신도, 담당 의사도, 가족들도 눈치채지 못한 채
수년에서 수십 년에 걸쳐 서서히 뇌 안쪽으로 진행해 들어가는 질환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이 가설은 단순한 학문적 흥밋거리로 그치지 않습니다.
만약 이 가설이 사실이라면, 운동 증상이 겉으로 나타나기 훨씬 이전부터 변성된 알파-시뉴클린이 이미 환자 몸속 어딘가에서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그렇다면 그 '훨씬 이전' 시기에도 환자의 몸에 어떤 형태로든 신호가 나타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 신호들에 관한 내용은 다음 글들에서 이어가겠습니다.


다만 그 신호들을 살펴보기에 앞서, 두 침입 경로 자체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변성된 알파-시뉴클린은 정확히 어떤 경로를 거쳐 어떤 신경을 타고 장에서, 그리고 코에서부터 뇌까지 이동하는 것일까요?
다음 글에서는 이 두 경로 가운데 첫 번째, 장에서 뇌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참고자료

1차 사료
Braak H, Del Tredici K, Rüb U, de Vos RA, Jansen Steur EN, Braak E. Staging of brain pathology related to sporadic Parkinson's disease. Neurobiol Aging. 2003;24(2):197-211. (브라크 6단계 병기 원전)
Hawkes CH, Del Tredici K, Braak H. Parkinson's disease: a dual-hit hypothesis. Neuropathol Appl Neurobiol. 2007;33(6):599-614. (이중 타격 가설의 정식 제안 논문)


학술 2차 문헌
Del Tredici K, Braak H. Review: Sporadic Parkinson's disease: development and distribution of α-synuclein pathology. Neuropathol Appl Neurobiol. 2016;42(1):33-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