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구의 건강칼럼 (16)
후각 상실과 파킨슨병, 코에서 뇌로 이어지는 숨겨진 통로
두 번째 침입 경로 — 코에서 뇌까지앞선 글에서는 이중 타격 가설이 말하는 첫 번째 통로, 즉 장에서 출발해 뇌로 이어지는 여정을 짚어보았습니다.
형태가 흐트러진 알파-시뉴클린이 장의 신경 조직에서 시작해 미주신경을 타고 뇌간까지 거슬러 오르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두 번째 통로, 즉 코에서 뇌로 이어지는 길을 다뤄봅니다.
숨 쉴 때마다 우리 몸이 외부 공기와 접촉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변성이 시작될 수 있고, 그것이 어떤 길을 밟아 뇌 깊숙한 곳까지 이르는지에 관한 내용입니다.후각 신경이 서 있는 자리 — 뇌가 바깥세상과 곧바로 이어지는 몇 안 되는 통로먼저 후각 신경이 몸속 어디에, 어떤 식으로 위치해 있는지부터 확인해 보겠습니다.
콧속 가장 안쪽, 천장에 가까운 부위에는 후각 상피(olfactory epithelium)라 불리는 특수한 조직이 있습니다.
냄새를 인식하는 후각 신경세포들이 이 자리에 빽빽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후각 신경세포는 인체 안에서도 상당히 특이한 생김새를 지닙니다.
한쪽 끝은 콧속 공기와 직접 접촉하고 있고, 나머지 한쪽 끝은 두개골에 나 있는 작은 틈(체판, cribriform plate)을 지나 뇌 속 후각 망울(olfactory bulb)까지 연결됩니다.
이 구조가 유독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보통 뇌 속 신경들은 외부 환경으로부터 철저히 보호받고 있습니다.
혈액-뇌 장벽(blood-brain barrier)이라 불리는 방어선이 있어서, 혈액 속에 있는 물질조차 뇌 안으로 쉽게 침투하지 못하도록 걸러줍니다.
다만 후각 신경만은 이러한 보호에서 예외에 해당합니다.
뇌와 바깥 공기를 곧바로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주는 것이 바로 이 신경입니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냄새를 내는 분자뿐 아니라 미세먼지, 바이러스, 화학 독소 같은 것들 역시 이 후각 신경과 만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국 뇌가 외부 세계와 가장 근접하게 접촉하는 부위가 다름 아닌 코 안의 후각 신경인 것입니다.
환경 속 독소와의 연결고리 — 농약을 둘러싼 연구들이 남긴 실마리이 가설이 설득력을 얻는 배경에는 환경 독소와 파킨슨병의 관계를 다뤄온 오래된 역학 연구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 무렵부터 일부 연구진은 특정 직업군이나 특정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파킨슨병 발병률이 유독 높다는 점을 보고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농사일에 종사하거나 농약을 취급하는 사람들,
그리고 농약을 뿌리는 지역 인근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서 파킨슨병 위험이 다른 사람들보다 높게 나타나는 패턴이 여러 차례 관찰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연구자들이 눈여겨본 농약이 두 가지 있습니다.
파라쿼트(Paraquat) — 잡초를 없애는 데 쓰이는 제초제로, 산화 스트레스를 강하게 유발하는 물질입니다.
로테논(Rotenone) — 천연 원료에서 뽑아낸 살충제로, 미토콘드리아의 기능을 곧바로 방해하는 성질을 지닙니다.
이 두 물질은 앞서 다룬 손상 기전과 정확히 이어집니다
미토콘드리아 기능 방해, 산화 스트레스 상승, 그리고 이로 말미암은 알파-시뉴클린 변성 촉진입니다.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로테논을 장기간 투여한 쥐의 흑색질에서 도파민 신경세포가 손상되고 파킨슨병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났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농약은 어떤 경로로 사람 몸에 들어올까요.
농약을 살포하는 작업을 하거나 농약이 남아 있는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숨을 쉬는 과정에서 이런 물질을 들이마시게 됩니다.
그리고 들이마신 독소가 몸의 다른 곳으로 향하기 전, 맨 처음 닿는 부위가 바로 후각 신경입니다.
후각 신경이 외부와 뇌를 곧장 잇는 통로라는 사실, 그리고 환경 독소가 바로 이 통로에서 알파-시뉴클린의 변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
이 두 가지가 겹쳐지면서 두 번째 침입 경로의 윤곽이 드러납니다.
가설이 그리는 진행 과정 — 코에서 후각 망울로, 다시 뇌간을 향해이 가설을 순서대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우선 환경 속에 있는 어떤 물질 — 농약일 수도 있고 다른 독소나 만성적인 자극일 수도 있습니다.
이 후각 신경세포 내부로 들어가, 그 안의 알파-시뉴클린이 처음으로 잘못 접히는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이렇게 변성이 시작되고 나면, 잘못 접힌 알파-시뉴클린은 앞서 살펴본 방식대로 이웃한 신경세포로 옮겨가기 시작합니다.
이 확산은 후각 신경세포의 길게 뻗은 돌기를 따라 위로 올라가, 두개골의 작은 틈을 지나, 결국 뇌 안쪽의 후각 망울에까지 다다릅니다.
후각 망울은 뇌의 앞쪽 아랫부분에 자리한 작은 구조물입니다.
변성된 알파-시뉴클린이 이곳에 머물게 되면, 그로부터 더 깊은 뇌 영역으로, 종국에는 뇌간을 지나 흑색질에 이르기까지 서서히 번져나갑니다.
(후각 신경이 손상을 입기 시작하면 환자는 냄새를 감지하는 능력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가 파킨슨병의 운동 증상보다 훨씬 이전에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은 실제 임상에서 상당한 의미를 지니는데,
이는 이어질 글들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겠습니다.)
두 경로가 마주치는 자리이중 타격 가설이 제시하는 두 통로 — 장에서 뇌로 향하는 길, 코에서 뇌로 향하는 길 — 는 출발점은 각기 다르지만 결국 하나의 지점으로 모입니다.
두 통로 모두 뇌간을 통과해 나아가며, 궁극적으로는 운동 조절을 관장하는 핵심 부위인 흑색질에 이르게 됩니다.
주목할 만한 점은 환자에 따라 두 경로가 차지하는 비중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환자에게는 장 경로가 주요하게 작용하고, 다른 환자에게는 후각 경로의 영향이 더 클 수 있습니다.
혹은 두 경로가 함께 작동하면서 질병의 진행 속도를 앞당길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러한 환자별 차이는 단순히 학문적 관심사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어느 경로가 더 활발히 작용하는지에 따라, 운동 증상이 드러나기 훨씬 전 환자의 몸에 나타날 수 있는 신호의 종류와 순서 또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며이번 글로 이중 타격 가설이 설명하는 두 침입 경로를 모두 살펴보았습니다.
각각 장과 코에서 출발해, 신경을 따라 천천히 뇌의 흑색질까지 올라가는 긴 여정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짚고 넘어가야 할 함의가 하나 더 있습니다.
변성된 알파-시뉴클린이 흑색질에 이르기 전까지는 환자에게 운동 증상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변성이 이미 장 신경계나 후각 신경 어딘가에서 진행되고 있다면, 운동 증상은 나타나지 않더라도 다른 형태의 신호가 먼저 환자의 몸에 나타날 수 있습니다.
다음 글부터 네 편에 걸쳐, 운동 증상이 나타나기 한참 전 환자의 몸에 먼저 찾아올 수 있는 신호들
— 변비, 후각 상실, 우울감과 불안, 그리고 수면 중 나타나는 행동 변화(REM 수면 행동장애) — 를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참고자료1차 사료 / 핵심 학술 문헌
Hawkes CH, Del Tredici K, Braak H. Parkinson's disease: a dual-hit hypothesis. Neuropathol Appl Neurobiol. 2007;33(6):599-614. (이중 타격 가설의 정식 제안 논문)
Doty RL. Olfaction in Parkinson's disease and related disorders. Neurobiol Dis. 2012;46(3):527-552. (후각계의 PD 침범 종합 리뷰)
Prediger RD, Aguiar AS Jr, Moreira EL, et al. The intranasal administration of 1-methyl-4-phenyl-1,2,3,6-tetrahydropyridine (MPTP): a new rodent model to test palliative and neuroprotective agents for Parkinson's disease. Curr Pharm Des. 2011;17(5):489-507. (비강 경로 동물 모델)
역학·환경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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