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구의 건강 칼럼 (26)
파킨슨병 초기증상, 왜 손이 떨리고 몸이 뻣뻣해질까?
도파민, 기저핵을 깨우는 열쇠 — 매 순간의 몸짓 뒤에 숨은 한 가지 물질지난 글에서는 기저핵이 우리 몸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위해 순간마다 처리하고 있는 세 가지 임무를 다뤘습니다.
신호를 걸러내는 일, 크기와 속도를 조절하는 일, 그리고 반복되는 동작을 자동화하는 일이었죠.
그런데 글 끝에 한 가지 실마리를 남겨두었는데요.
이 세 가지 임무가 모두 제대로 굴러가려면 기저핵에 반드시 공급되어야 하는 물질이 하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흑색질에서 생성되어 기저핵으로 전달되는 도파민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도파민이 기저핵 안에서 실제로 어떤 작업을 수행하는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도파민이 없으면 기저핵은 작동을 멈춘다먼저 비유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엔진과 정밀한 부품을 갖춘 차량이라 해도 연료가 바닥나면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습니다.
시동조차 걸리지 않습니다.
기저핵도 마찬가지입니다.
신호를 거르고, 크기를 맞추고, 반복 동작을 저장하는 등 기저핵의 정교한 회로들이 실제로 기능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도파민입니다.
흑색질에서 매 순간 만들어진 도파민이 기저핵으로 쉼 없이 흘러 들어가야만 기저핵의 모든 작업이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그래서 흑색질의 도파민 신경세포가 손상되어 도파민 생산이 줄어들기 시작하면, 그 영향은 곧바로 기저핵의 전체 작업에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도파민이 기저핵에서 담당하는 역할을 세 가지로 나누어 짚어보겠습니다.
① 동작을 시작시키는 '열쇠'
기저핵 안에 일종의 문이 있다고 상상해봅시다.
대뇌에서 "손을 뻗자"는 명령이 만들어지면, 이 명령은 실제 근육에 닿기 전에 반드시 기저핵의 이 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문이 열려야 비로소 명령이 전달되고 동작이 시작됩니다.
이 문을 여는 열쇠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 바로 도파민입니다.
도파민이 충분한 상태라면 문은 활짝 열려 있고, 명령은 지체 없이 통과합니다.
"일어나야겠다"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 몸이 곧장 반응하는 것도 이 덕분입니다.
우리가 평소 특별히 인식하지 못하는 그 자연스러운 흐름, 즉 생각이 바로 동작으로 이어지는 매끄러움은 도파민이 매 순간 이 문을 열어두고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반대로 도파민이 부족해지면 이 문이 원활히 열리지 않습니다.
분명 "일어나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도 몸이 즉시 따라주지 않고, 생각과 실제 동작 사이에 미묘한 간격이 생기며, 첫 동작을 떼는 것 자체가 유난히 힘겹게 느껴집니다.
이런 변화의 밑바탕에는 도파민 부족으로 기저핵의 '문'이 잘 열리지 않는 분자 수준의 문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변화가 실제 환자에게 어떤 식으로 체감되는지는 이어지는 글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겠습니다.)

② 두 근육의 손발을 맞추는 조율자
두 번째 역할은 동작을 매끄럽게 만드는 일입니다.
팔을 뻗는 간단한 동작 하나를 뜯어보겠습니다.
팔이 펴지려면 펴는 근육인 삼두근은 힘을 줘야 하고, 동시에 굽히는 근육인 이두근은 힘을 빼야 합니다.
만약 두 근육이 동시에 힘을 준다면 어떻게 될까요?
팔이 굳어버려 펴지지도 굽혀지지도 않는 상태가 됩니다.
마치 양쪽에서 팽팽하게 당기다가 한자리에 멈춰버린 줄다리기와 비슷합니다.
동작이 매끄럽게 이어지려면 한쪽 근육이 일하는 동안 반대쪽은 힘을 빼고 쉬어야 합니다.
그래야 동작이 한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습니다.
이 두 근육이 서로 손발을 맞추도록 조율하는 것이 바로 도파민의 역할입니다.
한쪽이 움직일 때 다른 쪽은 쉬게 해주는 이 조율 덕분에 팔다리는 뻣뻣하지 않고 물처럼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도파민이 부족해지면 이 조율이 흐트러지기 시작합니다.
두 근육이 동시에 긴장하면서 팔다리가 뻣뻣해지고, 무언가를 붙잡거나 굽힐 때 매끄럽지 못한 저항감이 나타나게 됩니다.
③ 불필요한 움직임을 차단하는 '필터'
세 번째 역할은 다소 뜻밖일 수 있습니다.
가만히 있을 수 있는 것, 이것 역시 도파민이 해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손을 무릎 위에 올려두고 손가락이 흔들리지 않는지 살펴보십시오.
손가락은 고요히 멈춰 있을 텐데요.
너무나 당연해 보이지만, 사실 이것도 우리 뇌가 매 순간 능동적으로 만들어내는 결과물입니다.
우리 뇌 안에서는 가만히 있는 동안에도 다양한 운동 신호가 끊임없이 생성됩니다.
"손가락을 움직여라", "발을 까딱여라", "고개를 흔들어라" 같은 미세한 신호가 수없이 발생합니다.
이런 신호가 전부 걸러지지 않고 근육까지 전달된다면, 가만히 있는 순간에도 손이 떨리고 다리가 까딱거리고 얼굴이 씰룩거리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도파민은 이런 불필요한 신호가 근육까지 닿지 않도록 막아주는 필터 역할을 합니다.
잡음을 걸러내고 원하는 소리만 들려주는 음향 장치처럼, 도파민은 우리가 원하는 동작 신호만 통과시키고 나머지 잡음은 차단합니다.
도파민이 부족해지면 이 필터 기능이 약해집니다.
억제되어야 할 미세한 신호들이 도파민의 차단 없이 그대로 근육으로 새어 나가고, 그 결과 환자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손이 저절로 떨리는 변화를 겪게 됩니다.
세 가지 임무가 한 물질에 실려 있다는 것 — 도파민의 무게여기서 주목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기저핵이 담당하는 세 가지 임무, 즉 동작의 시작, 동작의 매끄러움, 불필요한 신호의 차단이 모두 도파민이라는 단 하나의 물질에 기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도파민은 단일한 물질이지만, 기저핵 안에서는 마치 여러 몫을 동시에 해내는 일꾼처럼 순간마다 세 가지 일을 함께 처리합니다.
문을 열고, 두 근육의 균형을 맞추고, 잡음을 걸러내는 이 모든 작업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환자와 가족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흑색질의 도파민 신경세포가 사라지면서 도파민이 부족해지기 시작하면, 이 세 가지 기능이 한꺼번에 흔들리게 됩니다.
동작을 시작하는 속도가 느려지고, 동작이 뻣뻣해지고, 가만히 있어도 손이 떨리는 변화가 모두 같은 한 가지 물질의 결핍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파킨슨병의 운동 증상들은 결국 흑색질이라는 작은 영역에서 만들어지는 이 한 가지 물질 위에 모두 놓여 있는 셈입니다.마치며도파민이 기저핵에서 수행하는 세 가지 역할, 즉 문을 여는 열쇠, 두 근육의 조율, 불필요한 신호의 차단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매일 무심코 해내는 부드러운 동작들 뒤에는, 흑색질에서 만들어져 기저핵으로 흘러 들어가는 이 한 가지 물질이 매 순간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흑색질의 도파민 신경세포가 알파-시뉴클린(alpha-synuclein)의 침투로 서서히 죽어가기 시작하면, 도파민의 공급이 줄어듭니다.
이로 인해 우리 몸에는 정확히 어떤 변화들이 나타나기 시작할까요.
다음 글에서 이어가겠습니다.참고자료1차 사료 / 학술 2차 문헌
Gerfen CR, Surmeier DJ. Modulation of striatal projection systems by dopamine. Annu Rev Neurosci. 2011;34:441-466. (도파민이 기저핵의 직접·간접 경로를 조절하는 분자 메커니즘을 종합적으로 다룬 리뷰)
Albin RL, Young AB, Penney JB. The functional anatomy of basal ganglia disorders. Trends Neurosci. 1989;12(10):366-375.
Lanciego JL, Luquin N, Obeso JA. Functional neuroanatomy of the basal ganglia. Cold Spring Harb Perspect Med. 2012;2(12):a009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