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구의 건강 칼럼 (58)
셀레길린 라사길린 차이는? 파킨슨병 MAO-B 억제제 개발 역사로 보는 비교
검수자 : 김지호 대표원장
MAO-B 억제제 종류와 역사 총정리앞의 네 글에서는 COMT 억제제의 역사와 약리, 약 종류, 임상 활용까지 폭넓게 다루었습니다.
레보도파를 분해하는 또 다른 효소(COMT)와 이를 차단하는 약들에 대한 큰 그림이 이제 완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몸과 뇌에는 도파민과 그 관련 물질을 분해하는 효소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MAO-B(모노아민산화효소 B형, Monoamine Oxidase B)가 그 주인공이에요.
COMT는 메틸기를 붙여서 분자의 임무를 끝내는 효소이고, MAO-B는 산화 분해라는 다른 방식으로 도파민을 처리합니다.
더구나 이 효소를 막는 약들은 카비도파/벤세라지드나 COMT 억제제보다 더 긴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번 글은 MAO-B 억제제가 걸어온 약 60년의 발자취를 쫓아갑니다.
출발점은 1960년대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한 약리학자가 해낸 발견입니다.
이어서 1970년대 오스트리아 빈의 임상 적용, 1989년의 결정적 임상 시험과 그 뒤를 이은 신경 보호 논쟁을 거칩니다.
마지막으로 2017년 이탈리아에서 선보인 가장 새로운 약까지 살펴보겠습니다.
1965년 — 부다페스트의 발견MAO-B 억제제 중 처음 등장했고 오늘날에도 처방되는 가장 오래된 약이 셀레길린(selegiline)입니다.
이 약의 시작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있던 자그마한 약리학 실험실이었어요.
요제프 크놀(Joseph Knoll, 1925~2018)은 부다페스트 셈멜바이스 의과대학의 약리학 교수였습니다.
1960년대 초반 그는 MAO 효소를 막는 새로운 종류의 약물을 연구하는 중이었어요.
그때 의학계에서는 MAO 억제제가 이미 쓰이고 있었습니다.
1950년대 우연히 발견된 이프로니아지드(iproniazid)가 그런 약이었는데요,
결핵 치료제로 만들어졌다가 환자의 기분이 나아지는 현상이 포착되어 항우울제로 활용된, 최초의 정신과 약물 중 하나입니다.
다만 이 약들은 MAO 효소를 구분 없이 막았기 때문에,
티라민이 많은 치즈나 와인을 먹으면 급격한 고혈압 위기가 생길 수 있는 아주 위험한 부작용이 있었습니다("치즈 반응" 또는 "치즈 효과").
크놀의 목표는 이런 위험 없이 MAO만 선택적으로 막는 약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다양한 분자를 합성해 나가다가, 어떤 분자가 MAO의 B 형(B-type)에만 작용하고 A 형(A-type)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을 찾아냅니다.
1965년 그의 실험실에서 합성된 바로 그 분자가 셀레길린(또는 L-deprenyl)입니다.
그 당시 크놀이 염두에 둔 용도는 보다 안전한 항우울제였습니다.
셀레길린의 항우울 효과를 확인하는 임상 시험은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동유럽과 서유럽에서 진행되었습니다.1970년대 — 빈에서 파킨슨병 치료로 전환되다셀레길린이 새로운 역할을 얻게 된 결정적 계기는 1970년대 오스트리아 빈에서 마련되었습니다.
앞서 소개한 인물이 다시 무대에 오릅니다.
1960년대 초 파킨슨병 환자에게 레보도파를 처음 투여하는 시도에 함께했던 신경학자 발터 비르크마이어(Walter Birkmayer)와,
그와 협력한 약리학자 페터 리데러(Peter Riederer)입니다.
이 두 사람이 1970년대 후반 빈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요.
당시 병원에서는 카비도파/레보도파를 복용하는 환자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약효 변동을 겪는 모습이 분명하게 관찰되고 있었습니다(앞선 글들에서 추적한 바로 그 변동입니다).
비르크마이어와 리데러는 셀레길린이 뇌 속 MAO-B를 막아 레보도파로부터 생긴 도파민이 더 길게 유지된다면 약효 변동이 나아지지 않을까 하고 추측했습니다.
1975~1977년 임상에서 셀레길린을 카비도파/레보도파와 함께 쓴 환자들은 약효 시간이 유의미하게 길어졌고 약효 변동도 훨씬 부드러워졌어요.
1977년 비르크마이어가 Journal of Neural Transmission에 낸 보고는 MAO-B 억제제를 파킨슨병 치료에 정식으로 올려놓은 사건이었습니다.
그 뒤 1989년 미국 FDA가 셀레길린(상품명 Eldepryl)을 공식 승인하면서, 이 약은 카비도파/레보도파를 돕는 보조약으로 임상에 안착합니다.
1989년 — DATATOP 연구와 신경 보호의 가능성같은 해에 MAO-B 억제제의 위상을 한 단계 높여 준 결정적인 임상 시험이 발표되었습니다.
1989년 11월 미국 ‘Parkinson Study Group’이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게재한 DATATOP 연구입니다.
이 이름은 ‘Deprenyl And Tocopherol Antioxidative Therapy Of Parkinsonism’의 약어예요.
셀레길린(deprenyl)과 비타민 E(tocopherol)가 파킨슨병의 진행을 늦출 수 있는지를 알아보려고 한 대규모 임상 시험이었습니다.
연구진은 초기 파킨슨병 환자 800명을 셀레길린군과 위약군으로 무작위로 나누어 약 1년간 관찰했습니다.
주요 평가 항목은 환자가 레보도파 치료를 시작하기까지 걸린 기간이었습니다.
결과는 상당히 눈길을 끌었어요.
셀레길린을 복용한 환자는 위약군에 비해 레보도파 시작 시점이 평균 약 9개월 뒤로 밀렸습니다.
말하자면 셀레길린이 운동 증상이 본격적으로 악화되는 시기를 늦추어 주었다는 뜻입니다.
이 결과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놓고 의학계에서 커다란 논쟁이 벌어집니다.
한 가지 해석은, 셀레길린이 도파민 신경세포가 사멸하는 속도를 늦추는 진정한 신경 보호(neuroprotection) 작용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해석은, 셀레길린이 증상을 개선했기 때문에 환자가 레보도파를 더 늦게 필요로 했을 뿐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증상적 효과).
이 논쟁은 약 30년간 의학계에서 가장 길게 계속된 토론 가운데 하나로 남습니다.
DATATOP의 후속 분석과 여러 연구가 두 해석을 각각 일부씩 뒷받침하는 결과를 내놓았기 때문입니다.2006년 — 라사길린이 등장하다DATATOP으로부터 약 17년이 흐른 2006년, MAO-B 억제제 분야에 신약이 나타납니다.
라사길린(rasagiline, 상품명 Azilect)입니다.
라사길린은 이스라엘 테바 제약(Teva Pharmaceuticals)과 캐나다의 한 연구 그룹이 손잡고 개발한 약이에요.
셀레길린과 같은 MAO-B 억제제이지만 화학적으로 두 가지가 달랐습니다.
한층 강하고 선택성 높은 MAO-B 차단: 라사길린은 셀레길린보다 MAO-B를 5~10배가량 강하게 차단합니다.
암페타민 대사 산물이 없다는 점: 셀레길린은 몸에서 대사되면서 소량의 암페타민과 메탐페타민 같은 각성성 물질을 생성합니다
(일부 부작용과 잠재적 의존성의 원인으로 거론되는 부분이에요).
라사길린에는 이런 대사 경로가 없어 각성성 부산물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차이 덕에 라사길린은 출시 직후부터 셀레길린이 맡던 역할의 상당 부분을 가져갔고,
진료실에서 가장 흔히 처방되는 MAO-B 억제제 중 하나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2009년 — ADAGIO 연구, 신경 보호 논쟁의 결론라사길린이 출시된 이후 의학계는 DATATOP에서 비롯된 신경 보호 논쟁을 더욱 세련된 연구 설계로 다시 한번 검증하고자 했습니다.
2009년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실린 ADAGIO 연구(Attenuation of Disease progression with Azilect Given Once daily)가 그 검증을 시도한 최대 규모의 임상 시험입니다.
ADAGIO에는 '지연 시작(delayed-start) 설계'라는 정교한 방식이 적용되었어요.
환자를 두 집단으로 나눕니다.
A 그룹은 처음 36주간 라사길린을 복용하고 그 이후 36주 동안도 이어서 복용합니다.
B 그룹은 처음 36주간 위약을 복용한 뒤 나머지 36주 동안 라사길린을 복용합니다.
마지막 시점인 72주에 두 집단의 운동 증상을 견줍니다.
A 그룹이 B 그룹보다 확연히 낫다면, 초기 36주의 라사길린은 단순한 증상 호전이 아니라 질병의 진행을 지연시킨 작용(즉 신경 보호)이었을 수 있습니다.
이 설계는 단순한 증상 효과와 disease-modifying 효과를 임상에서 구분해 보려 한 정밀한 시도였습니다.
결과는 흥미로웠지만 결정적이지는 않았어요.
라사길린 1mg/일: A 그룹이 B 그룹보다 확실히 좋은 성적을 보였습니다 — 신경 보호 가설을 지지하는 신호였죠.
라사길린 2mg/일: 같은 패턴이 재현되지 않았습니다.
라사길린이 진짜 신경 보호 작용을 한다면 고용량에서 효과가 더 커야 하는데, 결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모순 때문에 FDA 등 규제 당국은 라사길린에 ‘disease-modifying’ 적응증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DATATOP에서 비롯된 30년 가까운 신경 보호 논쟁은 ADAGIO를 지나며 다음과 같이 매듭지어졌습니다.
MAO-B 억제제(셀레길린, 라사길린)가 환자의 운동 증상을 확실히 개선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 약들이 도파민 신경세포의 사멸 자체를 늦추는 진정한 신경 보호 작용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현재까지의 임상 데이터만으로는 결론을 낼 수 없습니다.
이 결론이 약의 가치를 떨어뜨리지는 않습니다.
증상이 좋아지는 것만으로도 환자의 일상에는 큰 변화가 생기니까요.
다만 "이 약을 복용하면 병의 진행이 느려진다"는 강한 메시지를 의학계가 환자에게 더 이상 전달하지 않게 된 계기였습니다.2017년 — 사피나미드, 이중 작용을 가진 약MAO-B 억제제 가운데 가장 나중에 나온 신약은 이탈리아 밀라노의 뉴론 제약(Newron Pharmaceuticals)이 개발한 사피나미드(safinamide, 상품명 Xadago)입니다.
2015년 유럽 EMA, 2017년 미국 FDA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사피나미드의 강점은 이중 작용에 있습니다.
MAO-B를 차단하는 데 더해, 뇌의 또 다른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타메이트(glutamate)가 과다하게 분비되는 것도 함께 조절합니다.
글루타메이트는 뇌의 활동을 일으키는 핵심 신호 물질 중 하나인데,
병이 많이 진행된 파킨슨병 환자에서는 이 신호가 과해져 이상운동증 같은 문제에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이 있어요.
사피나미드는 약효 시간을 늘려 주면서 이상운동증의 정도도 줄여 줄 수 있다는 임상 자료가 보고되어 왔습니다.
다만 한국을 포함한 일부 나라에서는 도입된 지 비교적 얼마 안 된 약이라 처방이 점차 확산되는 중입니다.
마치며 — MAO-B란 무엇이며 COMT와는 어떻게 다른가여기까지 MAO-B 억제제의 약 60년 역사를 함께 살폈습니다.
1965년 부다페스트의 발견으로 출발해 빈에서의 임상 전환, DATATOP과 ADAGIO를 둘러싼 신경 보호 논쟁, 그리고 2017년 사피나미드의 이중 작용으로 이어진 흐름이었어요.
그렇다면 의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MAO-B는 정확히 어떤 효소이며, 앞에서 다룬 COMT와는 무엇이 다를까요?
B 형이 따로 존재한다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다음 글에서는 MAO 효소가 신경생물학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MAO-B 억제제가 이 효소를 막아 도파민 분해를 늦추는 원리를 상세히 알아보겠습니다.참고자료1차 사료 / 핵심 임상 연구
Birkmayer W, Riederer P, Youdim MB, Linauer W. The potentiation of the anti akinetic effect after L-dopa treatment by an inhibitor of MAO-B, Deprenil. J Neural Transm. 1975;36(3-4):303-326. (셀레길린 PD 첫 적용)
Knoll J. The pharmacology of (-)deprenyl. J Neural Transm Suppl. 1986;22:75-89.
Parkinson Study Group. Effect of deprenyl on the progression of disability in early Parkinson’s disease. N Engl J Med. 1989;321(20):1364-1371. (DATATOP)
Olanow CW, Rascol O, Hauser R, et al; ADAGIO Study Investigators. A double-blind, delayed-start trial of rasagiline in Parkinson’s disease. N Engl J Med. 2009;361(13):1268-1278.
Borgohain R, Szasz J, Stanzione P, et al. Two-year, randomized, controlled study of safinamide as add-on to levodopa in mid to late Parkinson’s disease. Mov Disord. 2014;29(10):1273-1280.
의사학 종합 문헌
Riederer P, Laux G. MAO-inhibitors in Parkinson’s disease. Exp Neurobiol. 2011;20(1):1-17.
Knoll J. Deprenyl (selegiline): the history of its development and pharmacological action. Acta Neurol Scand Suppl. 1983;95:57-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