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구의 건강 칼럼 (33)
파킨슨병 자세불안정 원인과 낙상 예방법
파킨슨병 걸음걸이 변화 종종걸음 시작됐다면지난 세 편의 글에서는 손과 팔다리에 나타나는 변화들을 하나씩 짚어봤습니다.
동작이 느려지는 현상, 몸이 뻣뻣해지는 현상, 가만히 있을 때 떨림이 나타나는 현상까지 순서대로 다뤘는데요.
이 세 가지는 공통적으로 운동 증상이 시작되는 시점부터 어떤 형태로든 같이 나타나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조금 다른 성격의 변화를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팔다리 개별의 문제라기보다는 몸 전체의 균형 감각과 연관된 변화이고요.
앞선 세 증상보다 시기적으로는 훨씬 나중에 나타나지만, 환자분의 안전 측면에서는 오히려 가장 중요하게 다뤄야 하는 변화입니다.
의학 용어로는 자세 불안정(Postural Instability)과 보행 동결(Freezing of Gait)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놓치고 사는 것 — 서 있다는 것의 의미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한 가지를 먼저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서 있는 순간조차, 사실은 뇌가 쉬지 않고 개입해 정밀하게 조절해주고 있는 결과물입니다.
서 있는 동안 우리 몸은 실제로는 미세하게 계속 흔들리고 있습니다.
발바닥에서 전달되는 균형 신호, 귓속 평형 기관의 감각, 눈으로 들어오는 시각 정보가 끊임없이 뇌로 모이는데요.
뇌는 이 정보들을 통합해서 다리와 허리, 목 근육으로 미세한 조정 신호를 내려보내고, 그 결과 무게중심이 발바닥 위에 계속 머무르게 됩니다.
이 모든 과정은 본인의 의식과는 무관하게 자동으로 진행됩니다.
균형이 무너지려는 찰나에 뇌가 반사적으로 한 발을 내딛거나 허리를 굽혀 무게중심을 되돌리는 그 작용이,
우리가 안전하게 서고 걸을 수 있는 기본 바탕이 되는 셈이죠.
자세 불안정(Postural Instability)은 바로 이 자동 균형 조절 능력이 약해지기 시작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자세 불안정의 다섯 가지 모습① 서 있는 자세가 점점 앞으로 기움
환자분의 자세가 서서히 앞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합니다.
등이 약간 굽고, 머리가 어깨선보다 앞으로 나오며, 무릎도 살짝 굽은 자세로 바뀌어갑니다.
본인은 평소와 같은 자세라고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가족들이 예전 사진과 비교해보면 확연한 변화를 발견하게 됩니다.
② 걸음 폭이 줄고 종종걸음처럼 걷게 됨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보폭이 조금씩 줄어듭니다.
몸은 이미 앞으로 쏠려 있는데 다리가 그만큼 크게 뻗지 못하다 보니, 무게중심을 따라잡으려는 듯 걸음이 짧고 빨라지는 종종걸음 형태가 나타나는데요.
마치 뒤에서 누군가 살짝 밀어서 끌려가듯 걷는 모습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③ 좁은 곳을 지날 때 발이 갑자기 멈추는 현상 — 보행 동결
바로 이것이 보행 동결(Freezing of Gait)입니다.
평지에서는 느리게라도 걷던 환자분이 화장실 문틀이나 가구 사이 좁은 틈을 지나가려는 순간, 발이 바닥에 붙어버린 듯 떨어지지 않습니다.
머릿속으로는 분명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도 몇 초 동안 발이 움직이지 않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다시 걸음을 뗄 수 있게 됩니다.
방향을 바꾸려고 몸을 돌리는 그 순간에도 이런 멈춤 현상이 비슷하게 나타나곤 합니다.
④ 살짝 밀리는 것만으로도 균형을 잡기 어려움
가족이 별생각 없이 어깨를 살짝 잡아당기거나, 좁은 공간에서 몸을 슬쩍 피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곧바로 한 발 내디디며 자연스럽게 균형을 잡았을 텐데, 이제는 그러지 못하고 휘청이거나 앞으로 쓰러질 듯한 모습을 보이는 일이 늘어납니다.
⑤ 가구나 문틀에 부딪히는 일이 잦아짐
앞으로 기운 자세, 짧아진 보폭, 약해진 균형 조절 능력이 겹쳐지면서 가구 모서리나 문틀에 자기도 모르게 부딪히는 일이 늘어납니다.
이는 가족들이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변화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진료실에서 균형을 점검하는 방법 — 풀 테스트(pull test)자세 안정성을 확인하기 위해 의사가 진료실에서 사용하는 표준화된 검사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풀 테스트(pull test)인데요.
환자분에게 두 발을 어깨너비로 벌리고 편안하게 서 있게 한 다음, 의사가 뒤쪽에서 양쪽 어깨를 갑자기 살짝 잡아당기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물론 안전을 위해 의사가 환자 바로 뒤에서 언제든 붙잡을 준비를 한 상태로 시행하죠.
정상적인 경우라면 뒤로 당겨지는 순간 한두 걸음만 뒤로 디디면서 곧바로 균형을 되찾습니다.
반면 자세 불안정이 있는 환자분은 균형을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리거나, 여러 걸음을 비틀거리며 물러나야 하거나,
심하면 의사가 붙잡아주지 않는 이상 그대로 넘어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단순해 보이는 검사 하나만으로도 환자의 자동 균형 조절 능력이 어느 단계까지 와 있는지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이런 변화가 생기는 이유자세 불안정과 보행 동결의 근본 원인 역시 도파민 시스템의 약화에 있습니다.
의식하지 않아도 매 순간 균형이 자동으로 유지되는 이유는,
기저핵이 운동 신호를 정교하게 다듬어 자세 유지 근육에 정확한 양만큼 전달해주기 때문인데요.
이 조율 과정을 가능하게 만드는 핵심 물질이 바로 도파민입니다.
도파민 시스템이 점차 약해지면 이 자동 조절 기능도 함께 거칠어집니다.
무게중심이 흔들릴 때 즉시 한 발을 내딛어야 하는 반사 작용이 느려지고,
좁은 공간을 지날 때는 다리 근육으로 정확한 신호가 전달되지 못해 갑자기 발이 떨어지지 않는 상태가 생기는 것이죠.
가장 늦게 나타난다는 것 — 자세 불안정의 임상적 의미자세 불안정에서 임상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할 부분은, 여러 운동 증상들 중에서 가장 늦게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보통 진단을 받은 지 수년, 길게는 십수 년이 지난 뒤에야 뚜렷한 자세 불안정이 관찰되기 시작합니다.
이 사실은 환자분과 가족들에게 두 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첫째는 낙상 위험과 직결된다는 점입니다.
자세 불안정이 시작된 환자분에게는 욕실의 미끄러운 바닥, 침대에서 일어나는 순간, 문턱이 있는 구간 모두가 낙상의 위험 요소가 됩니다.
단 한 번의 낙상으로 인한 골절이 일상에 큰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이 시기의 가정 안전 점검은 권고 사항이 아니라 의학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조치라고 봐야 합니다.
둘째는 진단 초기부터 자세 불안정이 두드러진다면 다른 질환을 의심해볼 단서가 된다는 점입니다.
자세 불안정은 보통 늦게 나타나는 변화이기 때문에, 초기 단계부터 균형 문제가 뚜렷하거나 보행 동결이 두드러지는 환자분이라면
다계통 위축증(MSA)이나 진행성 핵상 마비(PSP)처럼 겉모습은 비슷해도 경과가 다른 질환들을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이런 감별은 신경과 진료실에서 의사가 종합적으로 판단할 영역이지만,
"초기부터 균형 문제가 유독 두드러진다면 한 번 더 확인이 필요할 수 있다"는 정도는 환자분과 가족분들도 알아두시면 좋습니다.
마치며지금까지 자세 불안정과 보행 동결이 무엇인지, 일상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진료실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확인하는지,
그리고 이 변화가 안전과 다른 질환 감별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펴봤습니다.
네 편의 글에 걸쳐 다룬 운동 증상들 — 느림, 뻣뻣함, 떨림, 자세 불안정 — 은 모든 환자분에게 같은 순서와 같은 속도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어떤 분에게는 떨림이 가장 먼저 두드러지고, 또 어떤 분은 떨림 없이 오랫동안 느림과 뻣뻣함만 진행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환자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패턴과, 하루 안에서도 컨디션이 좋은 시간과 나쁜 시간이 갖는 의미는 다음 글에서 본격적으로 다뤄보겠습니다.참고자료1차 사료 / 진단 기준
Postuma RB, Berg D, Stern M, et al. MDS clinical diagnostic criteria for Parkinson's disease. Mov Disord. 2015;30(12):1591-1601.
학술 2차 문헌
Bloem BR, Hausdorff JM, Visser JE, Giladi N. Falls and freezing of gait in Parkinson's disease: a review of two interconnected, episodic phenomena. Mov Disord. 2004;19(8):871-884.
Nutt JG, Bloem BR, Giladi N, Hallett M, Horak FB, Nieuwboer A. Freezing of gait: moving forward on a mysterious clinical phenomenon. Lancet Neurol. 2011;10(8):734-744.
Jankovic J. Parkinson's disease: clinical features and diagnosis. J Neurol Neurosurg Psychiatry. 2008;79(4):368-3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