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구의 건강 칼럼 (36)
파킨슨병 치료의 역사 ② — 혈뇌장벽, 뇌를 지키는 철통 보안
검수자 : 김지호 대표원장
혈뇌장벽, 파킨슨병 치료제 개발이 어려운 진짜 이유지난 글에서 저희는 한 가지 의문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도파민을 환자의 혈관 안으로 직접 주사했는데도, 정작 뇌에는 거의 닿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도파민이 몸속을 돌아다닌 것은 분명했습니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위장이 자극을 받은 사실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그러나 도파민이 정말로 필요했던 장소, 즉 뇌 내부에는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이 수수께끼를 풀 열쇠는 뇌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오랜 진화 과정에서 갖추게 된 정밀한 방어 장치에 있습니다.
의학에서는 이 장치를 혈뇌장벽(Blood-Brain Barrier)이라 부르는데요.
이번 글에서는 환자분과 가족분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이 장치의 원리를 차근차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 뇌가 이토록 엄격하게 보호받는 이유가장 먼저 알아두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뇌는 우리 몸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기관이라는 점입니다.
심장 근육은 손상을 입어도 부분적으로 회복될 수 있고, 간세포는 뛰어난 재생력을 지녔으며, 피부는 일주일 정도면 새롭게 교체됩니다.
반면 뇌를 이루는 신경세포는 한번 죽으면 좀처럼 다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던 신경세포를 평생토록 거의 그대로 사용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뇌는 다른 어느 장기보다 안전한 조건 속에 있어야 합니다.
혈액을 타고 흐르는 세균이나 바이러스, 음식과 약물에서 흡수된 낯선 물질, 면역세포가 뿜어내는 강력한 신호물질 등이
뇌 안으로 무작정 유입되면 신경세포는 한순간에 손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한번 손상된 신경세포는 되살아나지 않으므로, 애초에 이런 물질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편이 최선입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진화는 뇌를 지키는 매우 세밀한 시스템을 만들어냈습니다.
## 이해를 돕는 비유 — 공항의 보안검색대혈뇌장벽의 원리를 가장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방법은 공항 보안검색대를 떠올리는 것입니다.
비행기 탑승을 앞둔 사람은 누구나 보안검색대를 통과해야 합니다.
가방은 X-ray 검사를 받고, 몸은 금속탐지기를 지나며, 물병이나 라이터 같은 물품은 별도로 확인받습니다.
위험 요소가 될 만한 물건은 이 과정에서 걸러집니다.
몸의 다른 부위를 지나는 혈관은 동네 시장 입구처럼 비교적 느슨하게 물질을 통과시킵니다.
하지만 뇌로 향하는 혈관만큼은 공항 보안검색대에 버금가는 엄격한 절차를 거칩니다.
뇌혈관의 벽을 구성하는 세포들이 서로 빈틈없이 결합해 있어서, 혈액 속 물질 대부분이 뇌 조직 안으로 스며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촘촘히 짜인 뇌혈관 벽 전체를 일컬어 혈뇌장벽이라고 부릅니다.## 무엇으로부터 뇌를 지켜주는가이 검색대는 일상 곳곳에 도사린 위험으로부터 뇌를 보호해줍니다.
- 입을 통해 들어와 혈액에 흡수된 세균과 바이러스의 일부
- 음식이나 주변 환경에서 유입된 독성 물질
- 우리 몸이 스스로 분비하는 강력한 면역 신호물질 일부
- 혈액 속을 떠도는 커다란 단백질과 면역세포
이런 요소들은 평상시 뇌 안으로 거의 침투하지 못합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비교적 안전하게 일상을 이어가며,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방어막이 지닌 무게는 무너졌을 때 비로소 실감하게 됩니다.
세균이 어떤 경로로든 혈뇌장벽을 뚫으면 세균성 뇌수막염으로 이어지고,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뇌염이 발생합니다.
둘 다 상당히 위중한 응급질환입니다.
평소 이런 상황이 좀처럼 생기지 않는 것은, 혈뇌장벽이 조용히 제 몫을 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문제는 — 약물조차 통과하지 못한다는 점여기서 의학이 오랫동안 씨름해온 핵심 난제가 등장합니다.
이 검색대는 위험물질만 걸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치료를 위해 일부러 보내려는 약물까지 차단해버린다는 사실입니다.
일상적으로 복용하는 약물 상당수가 뇌까지 도달하지 못합니다.
흔한 항생제 여러 종류가 이에 해당하고, 인슐린을 비롯한 여러 단백질 약물도 마찬가지이며, 체내에서 만들어지는 신호물질 대부분도 예외가 아닙니다.
뇌 안에서 원하는 효과를 내고 싶어도 검색대를 뚫을 방법이 없다면, 그 약물은 의학적으로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됩니다.
이 난관은 신경계 질환 치료제 개발에 나서는 모든 연구가 처음부터 부딪히는 가장 큰 장애물입니다.## 도파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이제 다시 앞선 글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1960년대 초, 의료진이 환자의 혈관에 도파민을 직접 주사했을 때 어째서 뇌까지 전달되지 못했을까요?
이유는 명확합니다.
도파민이라는 물질 자체가 혈뇌장벽의 검색대를 통과하지 못하는 화학적 성질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분자 크기는 작은 편이지만, 전하를 띠는 성질과 물에 잘 녹는 특성 탓에 뇌혈관 벽의 촘촘한 틈새를 뚫고 지나갈 수 없습니다.
게다가 도파민만을 뇌 안으로 별도로 옮겨줄 전용 수송 체계도 우리 몸에는 거의 갖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결국 혈관으로 주입된 도파민은 심장, 위장, 혈관 등 몸 곳곳에 영향을 미치지만, 정작 뇌 안에는 거의 도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 벽 앞에 선 순간 — 그러나 길은 있었습니다1960년대 초 신경학자들이 처한 상황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병의 원인은 정확히 밝혀냈지만(도파민 부족), 그 부족분을 직접 채워 넣을 방법은 막혀 있었습니다(혈뇌장벽).
누가 봐도 절망적인 처지였습니다.
하지만 의학의 흐름을 바꾼 발견들은 흔히 이런 막다른 골목에서 태어나곤 합니다.
1957년, 누군가 결정적인 발상의 전환을 이뤄냈습니다.
'도파민 자체가 통과하지 못한다면, 뇌 안에서 도파민으로 변환될 수 있는 또 다른 물질을 보내면 어떨까?'
이 단순한 아이디어 하나가 이후 60여 년간 파킨슨병 환자들의 일상을 지탱해온 치료제를 만들어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그 아이디어의 실체와, 이를 떠올린 인물의 이야기를 자세히 풀어보겠습니다.## 참고자료학술 2차 문헌
- Pardridge WM. The blood-brain barrier: bottleneck in brain drug development. NeuroRx. 2005;2(1):3-14.
- Daneman R, Prat A. The blood-brain barrier. Cold Spring Harb Perspect Biol. 2015;7(1):a020412.
- Abbott NJ, Patabendige AA, Dolman DE, Yusof SR, Begley DJ. Structure and function of the blood-brain barrier. Neurobiol Dis. 2010;37(1):1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