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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람 건강칼럼

레보도파 효과와 한계를 담은 영화, 사랑의 기적 파킨슨병 2026. 09. 09

닥터 구의 건강 칼럼 (39)
파킨슨병 치료의 역사를 바꾼 하루 - 레보도파와 영화 사랑의 기적
검수자 : 김지호 대표원장

영화로 만나는 '깨어난 사람들' — 절망에서 희망으로, 그리고 그다음

지난 글에서는 코지아스가 1967년에 내놓은 적정 요법 덕분에 브룩헤이븐의 작은 임상 연구실 안 휠체어에 묶여 있던 환자들이 어떻게 다시 일어설 수 있었는지 다뤘습니다.
그 변화가 남긴 무게감은 당시 의료진과 환자 가족들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죠.


그런데 이 변화가 담고 있는 의미를 일반 대중에게까지 널리 알린 계기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1990년에 개봉한 영화 한 편이에요.
이 작품은 약이 보여준 극적인 효과만 다루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약이 지닌 한계까지 솔직하게 함께 담아냈다는 점에서 의사학적으로도 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이야기를 한번 정리해보려 해요.





영화 그 이상의 이야기 — 한 신경과 의사의 실제 진료 기록

이 영화는 허구가 아닙니다.
영국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신경과 의사 올리버 색스(Oliver Sacks, 1933~2015)가 1969년 실제로 돌보던 환자들의 사례를
1973년 같은 제목의 저서 Awakenings로 펴냈고, 이 책이 영화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우선 이 환자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었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요.
1917년부터 1928년 사이, 전 세계는 '유행성 뇌염(encephalitis lethargica)'이라는 무거운 신경계 감염병의 대유행을 겪었습니다.
흔히 '잠자는 병(sleeping sickness)'이라 불렸던 이 질병은,
환자가 극심한 졸음과 의식 저하를 겪는 급성기를 지나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심각한 운동 장애 상태로 굳어지는 경우가 많았어요.
팔다리는 거의 움직이지 않고, 얼굴에서는 표정이 사라지며, 목소리도 거의 들을 수 없는 상태로 수십 년을 버틴 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1960년대 후반, 색스는 미국 뉴욕 브롱크스에 자리한 베스 에이브러햄(Beth Abraham) 병원에서 이런 환자 약 80명을 함께 돌보고 있었습니다.
이 환자들 대다수는 1920년대에 발병했기 때문에, 색스가 처음 마주했을 시점에는 이미 40~50년 가까이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지내온 분들이었죠.
누군가는 한 자세로 굳어진 채 침대에 누워 있었고, 누군가는 휠체어에 앉아 눈동자만 느리게 움직일 뿐이었습니다.





1969년 — 색스가 내디딘 한 걸음, 그리고 깨어남

1967년 코지아스의 보고와 1970년 미국 FDA의 정식 승인, 그 사이 짧은 시기에 색스의 시도가 이루어집니다.


색스는 코지아스의 보고를 접한 뒤, 자신이 맡고 있던 환자들에게도 레보도파를 써보기로 결심합니다.
1969년의 일이었습니다.
이들의 운동 장애는 흔히 알려진 파킨슨병과 발병 원인 자체는 달랐지만(감염의 후유증이었으니까요),
뇌 안의 도파민 시스템이 약해졌다는 결과는 같았기에, 레보도파의 작용 원리가 이 환자들에게도 통할 수 있으리라 본 것입니다.


그 결과는 한마디로 정리하기 어려울 정도였어요.


40~50년 가까이 거의 움직이지 못했던 환자들이 며칠, 몇 주에 걸쳐 하나씩 깨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는 다시 스스로 식사를 했고, 누군가는 수십 년 만에 가족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병원 정원을 걸어 다니기도 했죠.
마치 아주 깊은 잠에 빠졌던 사람들이 차례로 눈을 뜨는 모습 같았습니다.


색스는 이 과정을 환자 개개인의 이야기로 정리해 1973년 한 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Awakenings입니다.





1990년 — 책이 영화로 다시 태어나던 해

색스의 책은 나오자마자 신경과 전문가들과 일반 독자 모두에게서 큰 반향을 얻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가 대중의 마음에 훨씬 더 깊숙이 자리 잡게 된 결정적 순간은, 책이 영화로 제작된 1990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영화 Awakenings는 국내에서 '깨어난 사람들' 또는 '사랑의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페니 마샬(Penny Marshall)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두 배우가 핵심 역할을 각각 소화했죠.


로빈 윌리엄스는 색스를 바탕으로 한 의사 캐릭터(말콤 세이어)를 연기했습니다.
환자들의 침묵 뒤편에도 의식이 살아 있을 수 있다는 믿음을 끝까지 놓지 않고,
레보도파라는 새로운 약을 시도해보기로 마음먹는 의사의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했습니다.
로버트 드 니로는 그 환자들 가운데 한 명인 레너드(Leonard) 역을 맡았습니다.
30년 가까이 몸을 거의 움직이지 못했던 환자가 레보도파 투여 이후 다시 활기를 되찾는 과정을 뛰어난 신체 연기로 표현해냈습니다.


이 작품은 그해 미국 아카데미상 작품상, 각본상, 남우주연상(드 니로) 후보에 이름을 올렸고, 전 세계 관객들의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겼습니다.



인상적인 한 장면 — 처음으로 공을 붙잡은 손

영화 속 한 장면이 이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장 압축적으로 담아냅니다.


레보도파를 투여받은 직후, 환자 레너드의 손에 다시 감각이 돌아옵니다.
의료진이 그에게 공을 가볍게 던지자, 그가 손을 뻗어 그 공을 잡아냅니다.
30년 가까이 굳어 있던 손이 자신의 의지로 공을 붙잡는, 그 소박한 동작 하나를 해낸 순간이었습니다.


바로 이 한 장면이 극장에 앉아 있던 수많은 관객들의 마음에 커다란 울림을 남겼습니다.
약 한 알과, 한 의사가 보여준 끈기 있는 노력이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동작에도 얼마나 큰 무게를 실어줄 수 있는지를 가장 단순하게 보여준 장면이었기 때문이죠.


브룩헤이븐의 환자들이 다시 일어나 걸었던 그 순간,
좁은 진료실에서 벌어졌던 그 변화의 무게가 이 영화 덕분에 비로소 평범한 가정의 거실까지 전해질 수 있었던 셈입니다.


다만, 영화는 한계 또한 솔직하게 담아냅니다


이 영화가 의사학적으로 특히 의미가 깊은 이유는, 약의 극적인 효과만을 보여주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는 점에 있어요.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레너드를 포함한 다른 환자들에게서 새로운 어려움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뚜렷했던 레보도파의 반응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들쭉날쭉해지는데요.
같은 용량을 먹어도 어떤 시간대에는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고, 또 어떤 순간에는 본인이 원치 않는 불수의적인 움직임이 생기기도 합니다.
영화 속 환자들의 표정에는 깨어남의 기쁨과, 다시 자기 몸을 마음대로 다룰 수 없게 되는 순간의 좌절감이 함께 스쳐 지나갑니다.


이 부분에 관한 자세한 의학적 원인과 대처법은, 진단을 받은 환자가 약물 치료를 오래 이어가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문제이며,
이 글에서 다룰 범위를 넘어서는 내용입니다.
다만 영화가 이런 한계를 회피하지 않고 정직하게 그려냈다는 사실이,
이 작품을 단순한 의학 드라마가 아니라 약물 치료라는 방식이 지닌 가능성과 한계를 함께 비춰주는 진지한 의학 작품으로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해요.





영화의 의의 — 그래도 약이 지닌 무게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영화가 보여준 두 얼굴, 즉 깨어남의 기쁨과 시간이 흐른 뒤 마주하는 한계는
사실 1960년대 후반부터 신경학 진료 현장에서 의사와 환자가 함께 겪어온 현실이었습니다.
영화는 이 사실을 평범한 가정의 거실에서도 이해할 수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로 옮겨 담았을 뿐이에요.


이 영화가 지닌 큰 의의 가운데 하나는, 의학에 어떤 한계가 있더라도
그 한계 안에서 환자의 일상을 바꿔놓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는 메시지를 매우 뚜렷하게 전했다는 점입니다.
30년 가까이 굳어 있던 한 사람의 손이 다시 공을 잡는 그 순간, 그 시간이 짧든 길든 그 자체로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무게를 지니고 있죠.


이 메시지 덕분에 영화가 개봉한 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새롭게 진단을 받은 환자와 가족들이 약물 치료를 시작할 때 마음속 깊은 위안을 얻는 작품으로 Awakenings가 남아 있습니다.





마치며 — 알약 한 알이 환자의 몸속에서 걷는 길

지금까지 칼손의 1957년 토끼 실험부터 코지아스의 1967년 임상 적용,
그리고 1990년 영화 Awakenings에 이르기까지, 레보도파라는 약이 환자의 손에 닿기까지 걸어온 긴 여정을 함께 살펴봤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한 가지 질문이 남아 있는데요.
환자가 그 알약 한 알을 입에 넣는 순간부터, 그 약은 몸속에서 어떤 경로를 지나가게 될까요?
입에서 위장으로, 위장에서 혈관으로, 혈관에서 뇌의 관문을 통과해 마침내 도파민에 이르기까지 — 그 다섯 단계의 여정을 다음 글들에서 차례차례 다뤄보겠습니다.



참고자료

1차 사료
Sacks O. Awakenings. New York: Doubleday; 1973.
Sacks O. Awakenings: clinical history. Br Med J. 1973;1(5858):723-724.


의사학·문화 자료
Awakenings (motion picture). Directed by Penny Marshall. Columbia Pictures; 1990.
Vilensky JA, Gilman S, McCall S. A historical analysis of the relationship between encephalitis lethargica and postencephalitic parkinsonism. Neuroscientist. 2010;16(6):575-588. (encephalitis lethargica 의사학)
Hoffman LA, Vilensky JA. Encephalitis lethargica: 100 years after the epidemic. Brain. 2017;140(8):2246-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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